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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평점 :
진실은 저 깊은 웅덩이 속에 있다.
인간의 교묘하고 악한 본성을 집요하게 파헤친 스릴러 소설을 만났습니다. '사샤 아랑고'라는 독일 신인 작가의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 파격적이고 흥미로운 책이네요. 읽는 내내 영화를 보고 있는 듯 눈앞에 펼쳐지는 선명한 핏빛 그림자가 오싹함을 배가시킵니다.
거짓말로 만들어진 사상누각 주인공 '헨리 하이든'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거짓말로 시작해 거짓말이 되어버린 인생은 아내 '마르타'를 만나면서 더욱 확고해졌죠.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좋은 허울은 아내가 만들어 준 것입니다. 매일 밤 마치 악마가 글을 쓰듯, 그 많은 이야기를 토해낼 수밖에 없는 아내의 업을 헨리의 이름으로 세상에 공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잘 것 없었던 한 남자가 희대의 사기꾼이 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포착합니다.
단 한자의 글도 써본 적 없는 헨리는 아내를 사랑을 넘어 존경으로 대합니다. 마르타는 내 영혼을 구해 준 나의 구원자, 나의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아름다움으로 유혹하는 출판사 편집장 베티와의 아슬아슬한 내연관계도 이어가고 있죠. 어느 날 내연녀 '베티'의 임신 소식을 접하면서 숨겨온 그의 본성을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합니다.
아내를 배신할 수 없었던 헨리는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아내에게 불륜 사실을 고하는 대신, 불륜녀 베티를 없애버리기로 하죠. 뱃속의 생명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일이 꼬이게 되면서 소설의 새로운 2 막을 선사하게 되는데요. 장르적인 쾌감과 빠른 속도감, 거듭되는 반전의 반전을 더하는 묘미가 독자로 하여금 공모자의 개입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나이 든 여자는 헨리를 알아보고 놀라서 곱상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오 마이 갓.....". '저스트 헨리, 맴."
헨리는 이 순간을 사랑했다. 좋은 일을 하고 뿌듯한 기분에 젖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기분 좋으면서도 보람 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그를 만나려고 먼 길을 왔을 것이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얼굴 한 번 보려고 말이다.
P57
세상의 모든 여성이 헨리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한껏 자존감이 차오른 헨리, 그의 거짓된 삶을 알고 있는 '기스베르트', 또 다른 목격자 '오브라딘', 출판사의 늙은 사무원 '호노르' 까지 생생한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살아 숨 쉬죠. 그 누구도 조력자인지, 배신자인지 알 수 없는 촘촘한 사건 구성이 점점 독자의 숨통을 조여 옵니다.
《미스터 하이든》의 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헨리'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리플리'나 《핑거 스미스》의 '수'와 '모드'처럼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 다변적인 인물입니다. 악인이지만 미워할 수 없이 빠져드는 나쁜 남자이기도 한데요. 아버지를 해한 것부터 세상의 악행에 몸담아왔던 헨리, 영리하고 억세게 운이 좋은 살인자입니다. 죽음을 관장하고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그리스 신 하데스가 환생한 듯 가짜의 인생도 능수능란하게 살아가는 캐릭터는 《미스터 하이든》 속 최고의 재미입니다.
아내가 말하는 '담비'는 일종의 맥 커핀으로 히치콕 영화에서 자주 선보이는 일종의 관객 속이기 수법입니다. 계속해서 신경 쓰이게 하는 담비의 정체를 좇으면서 독자는 담비가 어떤 일에 엮였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야기 덫에 걸려든 독자에게 한눈을 팔게 한 후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끝도 없이 몰아치게 만드는 질주가 이어집니다. 그 끝의 열린 결말은 허무함과, 당황스러움, 의뭉스러움이 한꺼번에 피로감으로 다가오지만 장르적 카타르시스는 묘하게 남습니다.
《미스터 하이든》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되었고, <캐리>, <미션 임파서블>로 유명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화로 스크린에서 헨리를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진실과 거짓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소설 《미스터 하이든》. 잘 짜인 구성과 치밀한 전개, 예측불허한 반전과 결말, 완벽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소설로써 한 여름 더위를 식히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