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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평점 :
《글쓰기 동서대전》은 시공간을 초월한 글쟁이들 39인의 특징을 총망라합니다. 동양과 서양 14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한 획을 그었던 문호들을 아홉 개의 글쓰기로 비교하고 있는데요. 물론 한정주 저자의 주관적인 관점일지라도 읽는 독자에게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되어 역사, 인문, 철학 등의 식견도 덤으로 넓히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자 본인도 2년 동안 조선을 비롯한 중국, 일본, 서양 글쓰기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며 하나의 철학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혀 저자와 독자 모두를 성장하게 하는 좋은 책입니다.
당대 사람들이 도대체 배운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을 만큼 기이하고 괴이할뿐더러 아주 날카롭고 완전히 새로운 글을 썼다는 얘기다. 그것은 문장에 관한 기존의 관념과 상식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자 그것을 전복하는 글쓰기였다.
P214
책은 총 아홉 가지의 글쓰기를 빌려 문장가들을 소개합니다. 동심의 글쓰기, 소품의 글쓰기, 풍자의 글쓰기, 기궤첨신의 글쓰기, 웅혼의 글쓰기, 차이와 다양성의 글쓰기, 일상의 글쓰기, 자의식의 글쓰기, 자득의 글쓰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에 수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명필가가 아니란 소리도 명필가란 소리도 아닙니다. 다만 책 속에 등장하는 문장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견해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특수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통함을 이해했으면 합니다.
아이처럼 동심의 마음으로 목적 없는 글쓰기와 주관적인 글쓰기를 추구했던 18세기 문장가들. 성인의 입신양명보다는 날카로움과 비판적인 글쓰기로 썩어빠진 사회에 칼을 겨눈 풍자의 글쓰기. 기이하고 괴이하며, 날카롭고 새로운 기궤첨신의 글쓰기로 파격적인 독창성을 추구했던 글쓰기. 책 속의 활자에서만 그치지 않고 광활한 세상과 마주하며 다양함과 웅장함을 담고자 했던 웅혼의 글쓰기. 타인과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글쓰기. 무목적성과 주관성, 일상성을 통해 최고의 글이 나온다는 일상의 글쓰기를 추구한 문장가를 한몫의 만나볼 수 있습니다.
18세기를 살았던 '이옥'이란 문장가를 알게 되었는데요. 일상을 글쓰기 소재로 삼아 호방하고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는 문체에서 현대 작가의 모습이 스쳐갑니다. 이옥은 앞에서도 열거한 바와 같이 좋은 글은 목적이 없고 사소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을 담아내는 '일상의 미학'이 주는 순수성과 참신함을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정조의 '문체반정'의 최대 피해자라 해고 과언이 아닌, 끝까지 자신의 문체를 고수하며 문체반정에 저항했던 유일한 지사였음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패관소설체로 지목당해 과거를 응시하지 못한다는 처분을 받고 귀양을 가는 등 초야에 묻혀 53세라는 나이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문장가도 중요하지만 시대를 잘 못 태어난 명필가를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도 놓칠 수가 없네요. 이옥의 《백운필》에 담긴 문장을 잠시 소개합니다.
처음 상추쌈을 씹을 때에는 옆 사람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삼가 그렇게 하지 않고 한 번 깔깔거리며 웃기라도 하면, 입에서 내뿜은 하얀 밥알이 이리저리 튀고 파란 상추 잎이 이곳저곳으로 흩뿌려질 것이다. 반드시 입에 든 모든 것을 다 뱉어내고 난 다음에야 멈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10여 차례 상추쌈을 목구멍 아래로 삼키고 나면, 나는 진실로 천하의 진기한 맛인 용미봉탕과 천하의 진귀한 맛인 팔진고량과 같은 허다한 음식조차 알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만다.
_이옥, 《백운필》, <담채>,P450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완독함으로 인해 개성(자기다움)과 자유(자유로움)과 자연(자연스러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필자도 마지막 책장을 덮고 세 가지 이상의 새로운 견해를 찾았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문장가를 많이 알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탓에 당시에는 혹평에 시달리거나 유배를 가는 등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을 글쟁이들이 책 속에서 즐거운 영회를 펼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지만 독특하고 신선한 명필가들을 소환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동서양을 넘나드는 문장가들의 개성과 자유, 자연스러움을 탐하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