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일반적이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는 세 자매, 유복하게 자란 유년시절, 성과 음주에 자유로운 사고방식 그리고 따뜻한 집.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트레이드 마크를 조금, 열거해 보았습니다. 이 부분이 에쿠니 가오리의 팬이 되기도, 나와는 맞지 않는다며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가끔 독특함을 맛보고 싶을 때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찾게 됩니다.


아사코와 엄마가 음악을 듣고 있는 2번가 집 현관에는 오늘 밤에도 아빠가 손수 쓴 가훈 액자가 소리 없이, 그러나 당당하게 걸려 있다.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P356

소설 속 등장인물은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입니다. 현대인에게 '관계'만큼 어려운 게 있을까요. 거의 대부분의 불신과 싸움은 타인, 가족, 친구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믿지 못하거나 너무 믿었다가 배신당하거나 때로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도 하는 힘도 '관계'입니다. 관계에 힘들어하는 현대인에게 처방전을 써주는 것 같은 제목.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는 2번가 집의 가훈을 요약한 제목입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그때를 모르니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하는 뜻의 가훈을 세 자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죠.

 


남자는 밤의 깊이를 시계로 밖에 잴 줄 모른다. 

세 자매의 각기 다른 사랑의 접근 방식을 에쿠니 가오리만의 문체로 시니컬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감성을 촉촉하게 하는 문장을 만나는 호사도 누립니다.


첫째, 아사코는 남편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지킨다는 다소 위험한 합리화로 곪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영역에 어긋나는 일상에 분노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아사코는 사랑한다고 느끼며, 행복하고 안정된 일상을 이룬다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죠.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캐릭터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용기와 과감한 결정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캐릭터입니다.

둘째, 하루코는 엘리트로 유학까지 마치고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커리어 우먼입니다. 소울 메이트급의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지만 스스럼없이 옛 동료와 사랑을 나누고, 일상 속에 파묻히길 좋아하는 캐릭터인데요. 여전히 남자친구 구마키를 원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확인하고 냉정하게 돌아섭니다. 평범함을 꿈꾸지만 위장한 평범함이 결국 화근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막내 이쿠코는 막내답게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아웃사이더입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언니들 틈에 끼지 못하자 괴상한 방법으로 남녀관계를 파악하기도 하고, 친구와의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갖지만 전혀 죄책감은 없는 아이.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악의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 경계가 모호한 이쿠코는 이웃집의 전형적인 현모양처 아줌마를 동경하며  훔쳐보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아줌마의 아들을 소개받아 (남들이 말하는)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들의 점점 사랑의 온도를 높이는 모습을 보는 흐뭇함도 재미 중 하나죠.

 

소설 속 세 자매의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이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리트머스지에 서서히 용액이 물들어가는 것처럼 자매들의 남녀관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상처받고 어려운 일에 당도했을 때도 '즐겁게 살자'라며 깊게 고민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퍽 부럽기도 했고요. 물론 자매들의 생각이 얕거나 막산다는 느낌은 아닙니다. 다만,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된 일도 아니지만 생채기를 내며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날을 살아갈 모두에게 제목처럼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