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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반스는 늘 주변인의 죽음에 익숙했습니다. 책에서 고백컨대 죽음에 대한 인식은 열세 살인가 열네 살 되던 해에 찾아왔다고 적고 있는데요. 맨 부커상에 영애를 안겨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는 자살과 기억이 가지고 오는 혼란을 소설로 담았습니다. 이후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는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을 다루며 깊은 슬픔에서 헤어 나온 반스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반스는 그렇게 주변인들을 떠나보내며 죽음에 면역력이 생겼나 봅니다. 드디어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는 지인,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친척 등의 죽음을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하게 다루며 두렵거나 피해야 할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돕습니다.
몽테뉴는 죽음을 물리칠 수 없는 우리가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p74
명목상으로만 기독교인인 집안 내력도 거들지 않았나 싶은데요. 무신론자 철학과 교수인 형,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자 어머니, 사회주의자였던 할머니 뇌졸중에 시달리며 병마와 싸우다 간 아버지, 사진에서 다시 느끼는 증조부의 유학자적 풍모 등 특유의 쿨하다 못해 시니컬함이 책에 지배적으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죽음을 논한 철학자들, 반스의 친구들의 코멘트를 통해 종교와 인문의 언저리로 죽음을 형상화해보고자 합니다.
나는 아버지가 죽음을 두려워했다고 장담하며,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자목 확신한다. 어머니는 무력함과 예속을 더 두려워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불가지론 자이고 어머니는 두려움을 모르는 무신론자라면, 이 차이점은 그들 슬하의 두아들에게 복제되었다.
P106
'죽음'을 이토록 유쾌하게 다룬 작가가 몇이나 될까요. 예순이 넘은 영국의 부호 '줄리언 반스'가 말하는 삶과 함께 하는 죽음은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는 책입니다. 책의 주제가 '죽음'이란 생각을 자꾸만 잊게 만드는 익살스러운 블랙유머에세이죠. 읽는 내내 (아침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기분을 망친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한 생각은 일체 들지 않았습니다. 되려 죽음을 우아하고, 유쾌하고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도처에 있는 죽음과 꽤나 친해진 느낌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인간은 영생하지 못하기에 삶과 죽음이 함께 합니다. 트라우마가 있는 대상을 한낱 유머러스한 농담으로 치부하면서 오히려 즐긴다면 우리의 마지막이 생각보다 유쾌하리라는 상상을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