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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칸에 초청받아 자꾸만 관련 기사가 쏟아지는 통에 개봉 전에 빨리 맞춰 완독하자, 굉장히 조바심을 내면서 읽었네요. 독서에 박차를 가했던 또 한가지 이유는 바로 두 여인의 인생(수와 모드)이 책 속에서 여러 번 뒤바뀌고 얽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결말을 알고 싶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한 언론사의 인터뷰에서 원작자 '세라 워터스'는 박찬욱 감독이 각색한 <아가씨>를 매우 긍정적으로 봤다고 하여 호기심을 증폭시켰죠. 또한 박 감독은 아내가 건네준 소설 《핑거스미스》를 읽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고 해( 이 책이 주는 여러 매력은 남성과 여성을 떠나 굉장한가 봅니다) 어떤 소설일까 궁금해하며 읽어내려갔습니다.
#핑거스미스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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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장 궁금한 제목 '핑거스미스'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핑거스미스' 뜻은 도둑을 뜻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은어이자 소설 속 주인공 수의 직업이기도 합니다. 또한 크게 보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각자의 사연을 품은 핑거스미스이기도 합니다. 속고 속이고 속아넘어가고, 자지러지는, 억울해서 미치겠는데 대체 누가 이 기가 막히는 반전 싸움에 최후의 승자가 될지 거미줄처럼 엮인 이야기가 촘촘하게 전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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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핑거스미스》에서는 이름이 중요한 열쇠이기도 한데요. 수전 트린더, 수전 스미스, 모드 릴리, 프레더릭 번트, 그레이스 석스비. 이름은 그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는 표식 중 하나이지만 《핑거스미스》에서는 이름이 뒤바뀌거나 이름 없이 가명, 예명, 별명으로 불리는 캐릭터들이 나옵니다. 이런 이름들은 (좀 헷갈리기도 하였지만) 신분과 이름을 감춰야 하는 비밀스러운 계략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총성 없는 전쟁터임을 상징하기도 하죠.
#작가' 세라 워터스'는 굉장한 이야기 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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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세라 워터스'를 소환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1966년 웨일스의 펨브로크셔에서 태어나 1991년 대학원으로 입학 한 후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 소설에 관한 연구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성(性)과 성의 표출과 역사에 대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19세기 감춰진 런던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졸업 후엔 소설을 쓰기 시작해 현재까지 4권의 소설을 썼습니다.
데뷔작인 《벨벳 애무하기》를 비롯해 두 번째 소설 《끌림》, 그 후 세 번째 빅토리아 시대를 다루며 쓴 2002년 《핑거스미스》가 있습니다. 《핑거스미스》는 세라 워터스가 발표한 빅토리아 시대의 동성애 소설 중 가장 크게 양쪽 진영(이성, 동성)에서 찬사를 받으며 맨 부커상 최종 후보와 오렌지상 후보에 오르며 추리소설 부분에 주는 대거 상 역사 부분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끌림》과 《핑거스미스》는 둘 다 BBC에서 2002년, 2005년에 각색되어 드라마로 반영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근 《나이트 워치》까지. '세라 워터스'는 굉장한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논문을 준비하다가 관심 갖게 된 배경을 소설로 완성하다니. 그것이 이렇게 대단하고 광활한 인물관계와 추리와 반전의 연속인 탄탄한 소설을.. 부럽기도 했습니다.
#각자의 욕망이 피어나는 《핑거스미스》 속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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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먼'은 '수'와 짜고 모드와 결혼하게 만들어 주는 대가로 3천 파운드를 주기로 약속합니다. 수는 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죠. 교수형으로 죽은 엄마 대신해 자신을 키워준 석스비 부인에게 진 빚도 갚아야 하기에 젠틀먼과 짜고 이번 기회에 '한몫' 단단히 잡아 보리라고 다짐합니다. 영국의 교외 '브라이어'에 살고 있는 숙녀 '모드'는 숙맥 중의 숙맥으로 런던에는 와본 적도 없는 시골 아가씨였죠. 하지만 모드(아가씨) 또한 겉모습은 숙녀였지만 어릴 적 정신병원에서 삼촌네 집으로 왔을 때부터 줄 곳 이상한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자신이 읽고, 쓰고, 거드는 일이 무슨 일인지도 모를 때부터 길들여진 모드는 수와 함께 생활하면서 숨겨왔던 욕망이 표출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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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로 다른 욕망을 품고 동침하게 됩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 걷잡을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고 마는 이 여자들의 사랑이 숨 막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진주예요. 내가 말했다. 모드는 그토록 하얬다. 진주에요, 진주, 진주.
p187
또 근엄한 학자의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음란 소설을 관리하는 삼촌의 이중생활과 이상한 취미도 감춰진 욕망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장치이고요.
#원작을 어떻게 각색했을까?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한국으로 가져와 어떻게 각색했을지가 바로 《핑거 스미스》와 <아가씨>의 비교 우선순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 해서 모르겠지만 한 인터뷰에서 박 감독은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원작을 한반도로 옮길 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신분제도가 남아있고, 극중 주요 기관인 정신병원이 있는 시기는 일제 시대밖에 없다는 것이다. 봉건 질서가 있고, 자본을 축적하는 계급이 등장하고, 한국, 일본, 일본을 통해 들어온 유럽이 조화와 갈등을 일으키는 세계를 묘사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발췌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021217001&code=9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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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가녀리고 흰 얼굴과 손을 가진 모드를 연기한 김민희 배우와 박찬욱의 새로운 총아 김태리 배우가 연기한 수(숙희)가 어떤 관계로 나올지도 관심사입니다. 원작 《핑거스미스》에서는 젠틀맨의 청혼을 빌미로 서로를 속이는 과정에서 사랑을 느끼는 동성 코드가 강한데요. 영화에서 어떻게 각색했을지,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대저택이 있는 브라이어를 어떻게 표현했을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소설 《핑거스미스》에서도 매력적인 악당 '젠틀먼(리처드 리버스)'이 두 여자와 묘하게 어울리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데요. 뼛속까지 나쁜 악당, 악질, 계략군, 사기꾼이지만 이쪽 계통 사람들에게 '젠틀먼'이라고 불리는 사나이를 하정우 배우가 맡아서 흡족스러웠습니다.
거듭되는 반전과 반전, 추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뚜거운 책의 끝장이 보입니다. 또한 하나도 버릴게 없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과 여주인공 수와 모드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서둘러 읽었죠. 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던 그 많은 유산은 누구에게 돌아갈지, 숨 막히는 이 치킨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지 무척 궁금해지게 만들죠. 스포일러라 자세한 이야기를 접겠습니다. 빨리 영화 <아가씨>의 개봉일만이 기다려지네요. 제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영화개봉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