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는 매번 소설을 읽지 못하고 영화를 먼저 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떤 작품을 영화화 한다는 소문이 돌면 원작을 미리 빠른 속도로 읽고 시각화된 영화를 보려고 기를 쓰는데. 속도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대부분 영화를 본 후 원작 소설을 찾아 여운을 간직하는데 급급했죠. 그런데 《캐롤》은 큰마음 먹고 영화 개봉 전에 부지런을 떨었어요. 영화로 어떻게 옮겨졌을지 기대가 되는데 , 일단 원작으로는 합격점! 이미 캐스팅이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로 굳어져 익명의 캐롤과 테레즈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두 배우의 싱크로율이 매우 높아 만족스러웠습니다.


등단과 동시에 엄청난 찬사를 받은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자신의 작품 중 오직 《캐롤》만을 동성간의 사랑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억 소리가 나는 거장 감독들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스무 편 이상이 영화화 원작 소설로 쓰였는데, 《캐롤》은 '토즈 헤인즈'감독의 의해 올해 영화화되었네요.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루니와 블란쳇이 각각 여우 조연과 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다시 한번 여성 배우의 파워를 과시하기도 했죠.

1952년에 출간된 《캐롤》은 두 여인의 금기된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며 초판으로 제작된 당시 원제는 《소금의 값》이었습니다. '하이스미스'는 동성애 소설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을 극도로 꺼려 '클레어 모건'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발표하죠. 훗날 1960년 하이스미스는 커밍아웃을 하게 되고, 1990년 영국 블룸스버리 출판사가 그녀와 새 판을 내기로 계약한 후 제목에 대한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하이스미스'는 이제야 애초에 붙이고 싶었던 《캐롤》이란 제목으로 바꿔 출간하며 작가의 욕망을 대변하는 캐롤을 세상에 드러내게 됩니다.



《캐롤》 곳곳에 남들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작가의 속마음이 숨어 있는데, 그 욕망과 슬픔을 찾는 재미도 소설 《캐롤》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캐롤》은 화자 테레즈의 입을 통해 바라보는 캐롤을 그리는데, 성별을 떠나 인간대 인간으로   진심으로 사랑했던 두 여인을 묘하게 관찰하고 세심히 묘사합니다. 



"그건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지, 안 그래?" 그는 계속 연줄을 풀었다. "그건 괜히 일어나는 게 아니야. 배경을 살펴보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라."

P150

 

 

  빠지나 보죠? " 

"늘 그렇지." 캐롤이 웃으며 말했다.

P159

테레즈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욕망과 쟁취하기 위해 위험에 빠지는 모습이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가능함을 암시합니다. ​


​캐롤은 그림 속 주인공이 아니라 애 딸린 유부녀이며 손등에 주근깨가 있고 욕하는 버릇이 있고 느닷없이 기분이 바닥을 치고 테레즈를 가지고 노는 나쁜 버릇이 있다고 토해내고 싶었다. (중략) 지금에서야 자신이 캐롤 말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마법에 걸렸던 사실을 깨달았다.

P428

《캐롤》은 서로의 사랑이 불꽃처럼 시작하고, 갈등하며 서서히 식어가는 과정을 유독 테레즈의 심경 변화로 드러내고 있는데, 금발의 아름다운 외모, 귀품 있는 스타일에 빠졌던 테레즈가 점점 캐롤의 주근깨, 주름, 허세를 알아차리는 부분이 등장하는데요.  동성 커플도 여느 이성 커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고자한 작가의 마음이 표현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어 싸우고, 질투하고, 집착하는 과정은 사랑하는 사이에서 행해지는 가장 자연스러운 과정이니까요.

 


 


다들 알다시피 《캐롤》은 동성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백화점 점원으로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고 있던 테레즈에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천사와도 같이 캐롤이 나타납니다. 둘은 많은 인파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알아챘고, 성별을 넘어선 금기된 사랑을 키워나갑니다. 저자 후기에 보면 맨해튼의 대형 백화점에서 판매 사원으로 일하며 우울하고 돈에 쪼들렸던 작가의 실화가 실려 있는데요. 꿈과도 같이 캐롤의 롤모델이 된 금발의 모피코트를 걸친 여자를 보고 '하이스미스'는 《캐롤》의 스토리를 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캐롤》의 줄거리를 집필하면서 앓았던 열병이  신내림을 받은 여인처럼 그려지는 건 무엇일까요? 불연듯 작가는 작품을 '출산의 고통'으로 비견하며, 자식처럼 생각한다는 이야기라 떠오릅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와 비슷해서였을까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면서 긍정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탓일까요? 그 후 작가는 전세계의 소수자들에게 격려의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캐롤》은 작가 본인을 위한 씻김굿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캐롤》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의 이야기입니다. 같은 성별을 가졌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내 안의 진정한 나를 찾고 연인을 만나는 이야기. 성별을 떠나 그 숭고하고 아름다운 과정을 소설 《캐롤》을 통해 함께 할 수 있어서 읽는내내 행복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