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고래 모노동화 1
김경주 지음, 유지원 디자인 / 허밍버드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마치 꿈을 꾸는 듯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모노동화 《나무 위의 고래》는 어른들을 위한 감수성 짙은 동화입니다. 극작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김경주'씨의 창작 동화로 세상의 아이러니에 관한 비유와 은유가 가득한 독특한 책이랍니다. 표지도 참 인상적인데, 은하수 같기도 하고 오로가 같기도 한 파스텔톤 표지가 여성들의 취향을 저격할 듯싶어요. 책의 내용과 디자인에도 무척 공을 들여 기획했다는 티가 팍팍 나는 예쁜 책이기도 합니다.


책의 뒷부분에 가면 책의 디자인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책은 총 256쪽. 텍스트는 전지 반절 크기 인쇄용지 앞면에 16쪽, 뒷면에 16쪽 총 32쪽이 인쇄되어 차곡차곡 접힙니다. 256쪽을 인쇄하려면 반절 용지 8장이 필요한데 8장을 모두 펼쳐서 세로 방향 4열 2행으로 놓으면 침대 매트리스 킹사이즈가 된다고 합니다. 이 고래가 8장 전체를 엮은 공간 앞면을 모두 차지해 있고, 마치 유영하 듯 인쇄되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네요. 또한 꿈의 언어를 위한 그래픽 단어와 문법도 등장하고, 여러 별자리도 등장하는데 기획 단계부터  촘촘하게 되어 있는 책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암호와 되어 있는 이름 모를 행성에서 온 책 같았어요.


책의 표지마다 물방울, 혹은 별자리 같은 무늬가 인쇄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고래 육신의 파편이라고 합니다. 책은 육신 전체에 고래를 휘감아 품고서 무의식 속 기억이나 예감처럼 고래를 암시한다고 설명하고 있네요. 인간과 다른 언어와 주파수를 가진 고래와 비록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책의 모든 순간 함께 하고 있다는 자국을 표현했다고 해서 의미심장했습니다.




겁이 나면 외로워지는 것인지, 외로워지면 겁이 나는 것인지 아직 난 잘 모르겠어

p152​

 


이제 와서 '모노동화'라는 책이 가진 형식에 궁금증이 생기게 됩니다. 동화면 동화고, 우화면 우화지 모노동화는 무엇일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문학 장르 중 모노드라마, 모노극,모놀로그 할때 그 '모노'가 맞더라고요. 혼자 독백하듯  중얼거리는 형식으로 진행기에 '모도동화'라는 장르를 붙인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태풍으로 나무 위에 얹힌 보트에서 일 년째 살아가는 여자아이 '디아'가 만나는 여러 캐릭터들과의 대화를 다루고 있는데요. 대화에는 전쟁을 일으키고, 거짓말을 일삼는 어른들이 나오는데 이 어른들은 소녀의 곁에 가까이 갈 수 없어요.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설득하지만, 소녀는 좀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도 내려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요.


“이곳에서 네가 겪은 수많은 이별 중 하나일 뿐이야. 이별도 자연의 일부야.”
“그걸 왜 내가 알아야 해?”
“너희 엄마와 아빠는 자신을 속였으니까.”
“진실을 받아들이기는 누구나 쉽지 않아.”
“넌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슬픔 때문에.”
“슬픔도 살 만한 곳이 필요하잖아?”
“하지만 사는 게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면 안 되니까…….”
“그렇지만 캐럿, 난 이별이 늘 두려워.”
“맞아. 그래서 넌 나무 위로 올라왔지. 하지만 너도 언젠간 이 나무와 이별을 해야 해.”

p152​

현실인지 상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상황들이 이어지는데요. 예를 들면 눈을 감고 바람이 되어 엄마, 아빠에게 찾아간다는 설정, 어둠(죽음)이 죽은자의 등에 엎혀 간다든지,원숭이에게 고층빌딩의 유리창을 닦도록 하는 편협한 세상, 전쟁을 일삼는 첩보원, 숲을 파괴하려는  개발업자, 편지를 전하는 우편배달부, 윤리를 가르치겠다고 숲속에 소녀를 찾아와 훈계하는 윤리선생님, 전쟁을 피해 나온 낙하병, 숲을 파괴하려는 벌목공 과 만나게 됩니다. 그 밖에도 숲에 살면서  동물들과 친구가 되기 때문에 많은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고양이 캐럿, 소식을 전해주는 부리갈매기, 꽃무늬를 가진 구렁이 등이 나오는데, 마치 《어린 왕자》 속 여우나 구렁이, 꽃처럼 주인공과 우정을 나누는 캐릭터죠. 오직 순수하고 마음이 예쁜 숲의 전령사들(동. 식물)만이 소녀와 가까이할 수 있습니다.


마치 바닷속에서만  숨을 쉴 수 있는 고래가 뭍으로 나와  외톨이가 되어버린 상황이 아련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어른인 저는 순수함을 잃어버렸는지, 소녀가 하는 이야기가 도통 이해가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이 동화는 어른들이 읽는 동화! 책을 읽다가 뒤통수가 뜨거워졌다든지, 부끄러워지는 감정을 느낀다면 제대로 이해했다는 증거겠죠. 나무 위에 사는 소녀와는 불통했지만 소통을 원하는 외로운 소녀를 따스히 응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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