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의심한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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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의심한다》 는 강세형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입니다.  ‘일상’, ‘환상’, ‘음악’이라는 세 가지 각기 다른 주제의 이야기들을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을 오가며 흥미롭게 풀어낸 새로운 형식의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본인 이야기 플러스 , 본인 주변의 (이니셜로 대변되는) 지인들에게서 영감 받은 것, 관계, 상상력이 어우러져 탄생한 특별한 에세이(혹은 소설)라고 말하고 싶네요. 에세이의 탈을 쓰고 있지만,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도저히 분간이 가지 않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글들이 신선합니다. 그냥 일상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굉장히 문학적으로 느껴지면서 2차적으로 읽는 이까지 되려 상상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강한 작가의 필체가 독특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답니다.


 


언니, 정말 저는 이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요. 저에겐 딱 30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고요한 정적의 시간, 나만의 시간이, 많이도 아니에요. 딱 30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P40

특히 인상 깊었던 '단 30분'에 등장하는 라디오 막내 작가 W의 사연. 우연히 열어본 쪽지로 이어진 'W'의 푸념들. 수신인이 결고 읽지 않을 것을 알지만 벽에게라도 하소연을 하듯 울다 웃다를 반복하는 구구절절한 쪽지를 읽어 내려가며 W에 대해 멋대로 상상해 봅니다. 혹독한 막내작가를 겪으며 자신에게 허락된 단 30분도 누리지 못해 변비에 걸린 W의 하소연이 재미있으면서도 슬펐던 까닭이었을까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막내작가 W.. 그 W가 보내온 쪽지들을 읽으면서 W를 회상하는 작가. 그리고 모든 것을 전지전능하게 읽고 있는 독자들. 모두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세상에서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자위하는 W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W 617' 읽고 나서는 '아 역시 작가는 사소한 것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뼛속까지 글쟁이구나'란 생각을 했죠. 어느 날 책상 의자에 앉아 허리를 꺾어 길게 기지개를 켜다 발견한 창문 틀의 빨간 색연필 자국 'W 617'.  그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작가는 깊어지는 궁금증과 씨름을 하기 시작합니다.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검색하고 도 알 길이 없고, W는 무엇일까? White, West, Woman, With, Wendnesday... 작가는 친구들까지 동원해 흔적에 대한 무한 상상을 펼치는데요. 저 또한 단순한 문구 같은데, 의미를 알 수 없어 궁금해 미칠 지경이더라고요. 흔적을 남기기 싫다는 얘기는 평생 글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작가의 입에서 나온 아이러니함에 잠시 갸우뚱해보기도 했고요.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도대체 분간이 가지 않는 자전적인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일기의 한 페이지를 몰래 읽고 있는 듯,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단편을 읽은 기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각각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이니셜로 불리는 지인들을 상상하는 재미 또한 매력 중에 하나! 아무래도 오랫동안 작가 생활을 하다 보니, 주변인들도 언어에 관련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니셜로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지, 작가가 상상해 낸 허구의 인물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시점이 오는데 그게 또 매력 중에 하나! 그만큼 작가는 독자들에게 강한 집중력, 온전한 상상력을 쏟아내게 하여  글을 읽는 데에만 할애하게 만드는데, 다음 장을 넘기지 않고는 미칠 것 같이 빠져들게 하기도 합니다.

《나를,의심한다》 를 통해 강세형 작가를 처음 맞이했지만, 이미 굉장한 이력을 가진 작가 겸, 라디오 작가더라고요. 《나를, 의심한다》를 읽고,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도 관심이 생깁니다. 시간을 내어 꼭 읽어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필력이네요.  끌림이 있는 글이 무척 독특하고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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