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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워낙 유명한 일본 작가라 소개는 거두절미하고자 합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들과는 좀 다른데요. 그동안 통렬한 풍자를 바탕으로 했던 전작들과 다르게 조금 '싱겁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살인을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거나, 사회적인 문제와 결부시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존엄과 그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드는 반변. 오쿠다 히데오의 《나오미와 가나코》에서는 두 여자가 남편을 죽이기로 공모하는 과정이 조금 엉성하다고나 할까요? 친한 사이기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대물림 된 폭력이라던지, 남자의 싸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더욱 풀어줬더라면 두 여자의 범죄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겠죠.
그렇다고 오쿠다 히데오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에요. 나오미 집안의 만연한 가정폭력, 황혼이혼, 중국인의 불법체류, 살인에 대한 정당성, 인간의 존엄성, 자유, 페미니즘 등 일본 혹은 전 세계적인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나코가 바라는 건 뭐야?" 나오미가 묻자 가나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고 말했다.
"밤이면 꼬박꼬박 잠을 자고 맛있는 물만 먹을 수 있으면 돼."
"뭐야, 맛있는 물이라는 게."
"써. 물이. 처음에는 입속이 갈라져 따끔따끔 아팠는데 그게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쓰게 느껴져."
p124
하지만 프로답지 못한 엉성함이 주는 긴장감이 극의 주도합니다. 요즘은 누구나 다양한 범죄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쉽게 범죄를 계획할 수 있게 되었죠. 정보화 기기 또한 매력적인 소품입니다. 이제는 없는 곳이 이상한 일이 되어버린 CCTV, 스마트폰, GPS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단서를 흘리게 되는데요. 참, 아이러니한 일이란 게 스마트한 인간의 삶을 만들어 줄 것 같던 기기는 이제는 우리의 삶을 갈아먹는 존재로 전략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이 점을 노릴 것 같아요. 그동안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여성으로서 느끼는) 굉장한 카타르시스와 페미니즘을 느꼈거든요. 일종의 르와르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여성 버디 무비를 보는 거다랄까. 활달하고 매사에 똑 부러지는 나오미와 수동적이며 소극적인 가나코의 극과 극의 성격은 초반에는 나오미가 주도하는 듯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잠재되어 있는 가나코의 순발력, 대처능력, 연기, 엄마로서의 강인함의 매력이 마구 발산됩니다. 평범하기 이를 대 없는 일본 여성이 수동적인 자아에서 능동적인 자아로 변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저로서는 통쾌함을 맛보았답니다.
한국영화 <차이나 타운> 속 여성처럼, 강인하고 인정 없는 차갑고 비정한 여성성도 느껴졌고요. 같은 여성으로서 동정도 공감도 희열도 같이 느꼈던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