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가을하면 말이죠. '독서의 계절, 쓸씀함, 결실, 스산함, 귀뚜라미 소리' 등등이 떠오릅니다.  이 중 '상실의 계절'이란 말을 가장 좋아 하는데요. 그만큼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외로움과 우울함이 크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점점 곁을 내주는 가을을 시샘이라도 하듯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알래스카의 망망대해에서 펼쳐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 유독 주목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살의 전설》은  속 아들 '로이'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속죄이기도 합니다. 또한 작가 '데이브드 벤'의 치유적 소설이기도 하구요. 두 번의 이혼과 실패했다고 여기는 인생의 끈에서  아버지는 겨우겨우 매달려 있습니다. 그 간절한 실마리가 연결되어 있는게 바로 '로이'이구요. 이런 로이가 상상하는 세계, 허구의 세계가 '수콴섬'에서의 1년 입니다. 가장 주목하고 싶은 내용은 '수콴섬'에서 겪게되는 고립감과 우울감의 여정일 겁니다. 밤과 낮이 다른 아버지(매일 밤 우는 아버지, 아침이면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밖에 의지 할 수 없는 아들 (로이)의 심정을 철저히 제 3자의 시선으로 말합니다. 건조한 문체와 한기마져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은 알래스카의 매서운 칼바람과 매일 같이 내리는 비와 함께 독자들을 얼어 붙게 만들고 있어요.

 

작가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1966년생인 '데이비드 벤'은 현대 미국문학의 차세대 작가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거장 '헤밍웨이'와 '코맥 매카시'의 계보를 잇는 작가라는 타이틀입니다. 여러 상을 쉽쓸기도하며 문단의 총예를 받기도 하지만,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바로 소설 《자살의 전설》내용과도 맞닿아 있는데요. 어린시절 알래스카에서 자라며,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겪게된 심리적인 고통의 심연을 소설로 승화 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숨기도 싶고, 지우고 싶을 것 같은 자신의 어두운 가족사 내면을 소설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10년의 집필과 2년의 퇴고 끝에 《자살의 전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반자적전 이야기인 만큼,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를 소설의 소재로 삼기까지,  엄청난 고민과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삶을 소재로 쓴다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한 편의 중편과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는 점이 다른 소설과의 차별화를 선언합니다.

 

표지에서부터 《자살의 전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요.  검고 깊은 망망대해와 갈매기, 한 남자의 공허한 뒷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마치 '걸레빤 물을 끼얹은 것 같은  회색 빛 하늘'과 어울어지며 소설의 내용과 잘 어울렸습니다. 마치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어둡고 황폐한 곳에서 자력으로 모든 것을 해야하고, 어떠한 목적과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부자의 모습이 많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사실, 《자살의 전설》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낯선 알래스카의 풍경과 나무이름, 물고기 이름 등이 쉽게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 소설 속에서 내포하고 있는 작가의 죄의식을 따라가다보면 점점 조여오는 공포와 상실의 깊이에 매료되어 버립니다. 저 또한 그랬구요. 그래서 잡은 책을 단번에 놓을 수 없이 읽어내려 갔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마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독자분들이 있을까요.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게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도돌이표' 같은 소설임에 틀림없습니다. 다가오는 가을 단 한권의 소설을 원하신다면, 《자살의 전설》을 조심히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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