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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번역합니다 - 고독해서 즐거운 번역가의 일
이진 지음 / 수오서재 / 2026년 10월
평점 :

AI가 등장한 시장에서 사라질 위기의 직업 중 번역가도 포함이다. 하지만 위험 직종일 뿐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인간만의 뉘앙스로 말과 행간의 의미를 전달하는 번역은 고도화될 것이며, 다만 비싸질 수 있다. AI 보다 인간이 전하는 번역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 대 사람을 원하는 사람에게 번역은 돈 있는 소수에게만 허락될 가능성이 있다. 그야말로 뜻만 전하는 기계적 번역 대신 유려하고 풍성한 의역을 품은 번역은 아무나 볼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책은 30년간 아이를 키우며 번역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번역가의 에세이다. 혼자서 일하는 데 익숙한 필자와 비슷한 스타일로 일하는 분이다. 읽으면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멀티 스태킹도 능력으로 치부하는 시대에 번역 하나만 했던 저자의 고독함과 용기가 느껴진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여전히 번역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카피라이터였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언어 유산이 낳은 재능이 아니었을까.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보다 보면 다른 언어를 자막으로 느낀다. 영화 쪽도 마찬가지인데, 특정 번역가는 MCU의 여러 작품에 오역을 남겨 팬들의 원성을 샀고, 잘나가던 어느 번역가는 과거의 일이 들통나면서 무너졌다. 일을 못하는 사람과 일은 잘하는데 인성이 잘못한 사람으로 작품의 온전함을 전달받지 못하는 사례가 일어났다. 참 중요한 일인데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재능으로 인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었는데 중단된 경우다.
그런 까닭에 이진 저자의 꾸준한 길이 멋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생각, 예술, 가치관을 그대로 전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저자 또한 모호한 원문을 그대로 모호하게 두어야 할지. 해석하지 못하는 번역의 문제로 보아야 할지는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한 김영하 소설가의 사례로 갈음된다. 재미없던 원작이란 소리를 듣기 싫어 자신만의 문체로 의역한 김영하 버전의 개츠비는 잘 팔렸고 나도 소장하고 있다.
언어라는 바다에서 번역가는 한국산 생선을 길어 올리는 어부와도 같다. 생선이 넓은 바다를 유랑하는 존재고, 바다도 사실 경계가 없지만, 유독 국산을 원하는 고객에게 밥상 재료를 선사하는 것과 같은 거다. 이미 세계화인 시대에 폰만 있다면 언어 장벽은 대수가 아닌 시대가 되었지만 맛깔나는 정서는 사람이 하는 일인 거다. 오랜만에 읽었던 책이었던 만큼 들떴던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자양분을 곱씹은 것 같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