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쓸모없다 - 사노 요코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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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우정이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 암묵적으로 믿고 있었거든.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어.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면 그제야 타인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나 자신을 정당화해도 친구들이 그걸 맞장구쳐주잖아.

나이가 한 해 두해 들어가며 산다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70살은 돼야 좀 나아지려나? 여전히 삶은 살면 살수록 인간을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사회생활에서도 친구(동료) 관계로 지친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관계가 힘들고 지쳐서 그만두는 일이 생긴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기도 하는데, 대인기피증이나 히키코모리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미술 작가 사노 요고의 책을 보았고, 우연히 이 책이 내 앞에 왔다. 사노 요고는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고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미술대학에서 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백화점 홍보부에서 디자이너고 일했다. 1967년 독일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하고 1971년 <염소의 이사>를 펴내며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그림책, 동화, 소설, 에세이 등을 다양하게 넘나들며 활동했다. 여러 상을 받았는데 2003년에는 일본 정부가 학문, 예술 분야 공로자에게 주는 훈장 자수포장을 받았다. 2010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시즈코 상>, <문제가 있습니다> 등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에세이를 펴내 한국에도 팬이 많다.

그 시절 친구들이랑 끈끈하게 마음을 나누는 사이 같은 건 아니었어. 그저 순간순간을 하얗게 불태우는 거애. 심술을 부리는 것도, 조금 다정하게 구는 것도 말이지.


이 책은 사노 요코가 중국에서 만난 양녀 하사에를 첫 번째 친구로 맞으며, 오빠와 삼각관계도 깨닫게 된 최초의 인간관계를 담은 책이다. 사노 요코의 어린 시절이 담겼다. 할머니로 처음 알게 된 그녀의 꼬꼬마 시절을 알게 되어 즐거웠다. 인간이란 동물이 놀이에 진심인 본능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배워간다. 오빠를 진심으로 좋아하며 신나게 놀았다는 이야기에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 중학생이 되면서 사노 요코는 많이 달라진다.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못하자 밖으로 나갔고 친구를 만들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부모나 형제 보다 역시 친구가 중요하다.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가족 보다 오래 보게 되니 관계 관리가 필수인 것이다. 사노 요코는 동경하던 친구, 호기심으로 보던 친구, 왕따 하는 친구, 어른스러운 친구 등 주마등처럼 여러 친구를 사귄다. 에세이에서도 그때 사귀 친구들과 여전히 잘 지낸다고 귀띔한다.


나는 말이야, 싫은 면이 전혀 없는 사람과는 친구로 오래 지내지 못해, 상대의 싫은 면까지 다 포함해서 하나의 온전한 인격으로 인식하는 습관이 있나 봐.

p 127

사노 요코는 18세 때 미술 대학에 진학하려 도쿄 학원에서 같은 목표(예술)과 감수성의 친구들을 만나 한층 성장한다. 인간의 인생이 서서히 시작되며 거미줄 같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친구들의 우정, 인류애를 진하게 경험한다.

참 부럽다. 그러고 보니 나도 중학교 친구를 여전히 만난다.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아도 늘 생각하게 된다. 친구란 언제 어디서 만나도 좋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다. 인생에 그런 친구 하나쯤 있다면 괜찮은 인생 아닐까. 나는 그런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떠올리며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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