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전후로 기업의 친환경 정책이 유행이었다. 앞다투어 친환경 소재의 제품을 쏟아내고, 플라스틱 그릇 대신 용기나 텀블러를 쓰고, 종이 빨대를 했다. 에코백을 들고 다니고 장바구니를 챙기면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지자체, 영화제 행사 기념품은 에코백 아니면 리유저블컵이었다. 친환경 제품을 쓰면 지구가 조금 덜 아픈 게 아닐까 믿었지만 거대한 산업구조에 희생된 것뿐이었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면서 개인의 죄책감은 커져갔다.
소비를 조장하는 또 다른 가스라이팅,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 후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것들만 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어느 정도는 걷고, 장바구니를 생활화하고 무거워도 텀블러는 챙기다. 에코백을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워싱 공정으로 물과 세제가 쓰인다는 것을 알았다. 에코백이 지구 환경에 일조한다고 생각했지만 에코백은 수백번 들어야 생기는 가치였다. 집에 쌓여 있는 에코백을 자주 쓰지 않는다. 괜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개인의 친환경 실천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었다. 기업은 개인에게 떠넘긴 죄책감으로 또 다른 상품을 사게 만들고 (주고 친환경 제품, 탄소발자국 줄인 제품) 면죄부를 주는 것이었고, 친환경 소비를 해야 의식있는 사람인 것처럼 만들었다. 2004년 영국의 석유 회사 BP가 만든 탄소발자국 개념 때문에 가속화되었다. 환경 운동 단체들은 재정난에 시민 운동 전략을 바꿔 개인 실천 중심으로 방향을 바꾼다. 개인에게 전가하는 책임의식을 '생활양식 환경주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