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른 등을 만질 때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엄마 그리고 나
양정훈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해 지날 때마다 세우는 새해 소망 혹은 계획이 건강을 우선순위에 올린지 오래다. 자고 나면 가뿐했는데 예전만큼 회복되지 않는 컨디션을 감지할 때, 늘어나는 주름, 흰머리를 마주할 때, 양가 부모님의 건강 신호만 들어도 겁이 날 때. 아 내가 나이 들었구나 실감한다.

내 이야기가 아닐 거 같고 먼 북소리처럼 희미하게 들렸지만 건강은 장담할게 못 되기 때문에 주말 늦은 오후 저녁때가 다 되어 읽은 책이 유독 마음을 건드린다. 누구라도 떠나보낸 기억이 있다면 쉽지 않을 독서가 되게 싶더라.

부모님 두 분이 암을 진단받는 기분은 어떨까. 유방암을 이겨내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얼마 후 자궁암이란 소리를 듣는다면..?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낯선 공포가 엄습해 왔다. 예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죽은 엄마가 담가준 반찬을 몇 년째 버리지 못한 사연을 읽다가 펑펑 울었다. 나도 비슷한 상황이라면 엄마 김치가 쉬어 터져 상해버려도 먹지도 못하고 놔두고 있을 것 같아 괜히 먹먹했다.



죽은 자의 김치가 밥상에 놓여 산 자른 먹인다. 밥 먹는 일도 까맣게 잊을 것만 같은데 끼니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는 고팠다.

P 292

책은 유방암 발병 후 자궁으로 전이되어 완치 판정 3개월 만에 복수가 차오르던 엄마를 기록한 아들의 병상일지다.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항암 중 견뎌 온 날들을 힘겹게 꾹꾹 눌러 담았다. 눈물 없이 읽기 어렵고, 참기 힘든 고통이 그대로 느껴져 다음 장을 넘기기 쉽지 않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날은 먼 미래 같지만 지금 이 순간일 수 있다. 부모는 자식의 효도를 기다리지 않기에 현재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커진다. 당장 못 다한 이야기, 못한 일이 있다면 실천하자.

힘든 기억을 글로 적어 책으로 엮은 정훈 씨가 부러웠다. 엄마를 글로 기록해 놓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책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을 테니. 그러나 쓰는 동안은 얼마나, 퇴고하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도 떠올리니 안쓰러웠다. 어쨌거나 이 책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잔인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산자의 밑거름이 되어 버린 거다. 남겨진 사람들은 떠난 사람을 평생 가슴에 묻는다. 추억을 곱씹으며 조금씩 살아갈 힘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