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상인가 - 평균에 대한 집착이 낳은 오류와 차별들
사라 채니 지음, 이혜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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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정상인가 봐"

정상과 비정상의 시작은 어디일까? 이분법적 폭력은 아마 의학계에서 가장 많이 쓸 것이다. 주류 집단, 평균 수치에서 벗어나면 스스로 부끄럽거나 자괴감을 느껴 또 다른 병을 만들어 낸다. 정상에 속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렇지 못하면 괴로워한다. 정상의 역사는 배제의 역사와 맞물린다. 계급, 인종, 젠더, 성 정체성, 종교적 신념과 나란히 한다.

'정상'이란 말은 200여 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우생학이 인기를 끌었던 시기다. 정상은 심지어 인간에게 쓰는 말이 아니었다. 정상이란 말은 수학에서 각도와 방정식, 공식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였다는 거다. 정상성에 관한 이야기는 1801년 1월 1일 이탈리아의 사제이자 천문학자인 주세페 피아치가 처음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아돌프 케틀러다. 그는 르옴므 모옌(평균인)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통계 분석을 근거로 평균인이 진정한 인간을 대표한다고 믿었다. 참과 오류라는 천문학적 지식 개념에 기반한 인간 사이의 표준은 평균이자 '옳은 것'이라는 표준을 만들어 냈다.

그 시대에는 그리스 조각처럼 완벽한 비율과 예술적 이상이 과학적 평균치로 생각되었다. 인간 특징을 오차 곡선 위에 그려 넣어 통계적 평균으로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길을 터게 된다. 그가 말하는 평균인인 최초의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천문학계에서는 케틀러가 가우스의 오차 곡선이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면 의학계의 콩트는 브루세(거머리 사혈)의 의료 인식 체계를 따랐다.

사범 학교를 의미하는 최초의 노멀 스쿨이 1771년 빈에 설립되었고 20여 년 후 파리의 가장 유명한 고등사범학교인 에콜 노르말이 생겼다. 과거에는 모범적인 교육 모델로 여겨졌다. 그 의미는 희석되어 지금의 의미가 되는 기틀이 되었다. 케틀러에서 시작해 브루세, 콩트, 골턴, 피어슨으로 이어진 과학자들의 왜곡이 만든 척도다.


부유한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전 세계의 표준을 형성했다니 우스운 이야기다. 여성은 1945년 열린 조각상(디킨슨, 벨스키이 만든 남성은 노르만)과 신체 사이즈가 같은 여성을 찾는 '노르마 경연 대회'때문에 아름다움의 신격화에 희생되어 왔다. 아이들은 바비 인형으로 아름다움의 이중잣대를 은근히 강요당했다.

200년 밖에 되지 않은 왜곡된 역사가 스스로를 꾸짖고 몸을 혐오하게 만든다. 집단에 어울리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집착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망친다. 저자는 정상의 개념을 '개인적이자 정치적'인 것이라 정의한다. 우리는 각자 다른 역사, 문화, 인종, 사회적 배경에서 살았지만 부유한 백인 남성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때문에 '자유롭다'는 건 남들과 다름을 드러내야 하는 도전이지 싶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도 조금은 관대해졌다는 거다. 정상성을 지키는 데 힘 빼는 것보다 나다움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걸 잊지 말길. 보편적이지 않다는 건 특별한 거고 나로서 가치가 생긴다는 것을.

✔️본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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