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테이블 너머로 건너갈 때
조나단 레덤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셸 공드리'가 선택한 소설이라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이 독특하다. 테이블 너머에 뭐가 있길래 넘어가려는 걸까. <무드 인디고> 에서 펼친 폐에서 수련이 자라는 병의 은유. <이터널 선샤인>의 사랑과 이별, 기억에 관함 판타지. <수면의 과학> 에서 보여준 꿈과 소울메이트. 미셸 공드리가 잘하는 장점이 기본적인 소설의 장점에 부합해서 또 하나의 작품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무드 인디고>에서 《세월의 거품》 제대로 시각화 못 한 걸 감안하면 비주얼을 끝내 줄 것으로 예상된다.

소설은 양자역학, 웜홀, 평행우주, 멀티버스 등 마블과 디씨가 지긋지긋하게 우려먹는 물리학을 로맨스와 결합했다. 읽으면서 내내 무슨 소리야? 싶었는데 후반부에서 진한 감동이 찾아왔다. '오펜하이머'가 추진한 맨해튼 프로젝트 이야기도 아주 짧게 비유로 나온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은근한 접점이 흥미로웠다.


<그녀가 테이블 너머로 건너갈 때> 줄거리

같은 대학의 교수인 앨리스와 필립은 연인 사이다. 서로 다른 사람끼리 끌리는 걸까. 실험에 매진 중인 물리학자 앨리스와 인류학자인 필립은 열렬히 사랑 중이다. 각자의 분야를 존중하지만 필립은 앨리스가 바빠 자신을 소홀히 여기는 것 같아 내심 서운하다. 그러던 중 앨리스는 구멍, 즉 챔버에서 웜홀을 발견한다. 다른 교수진의 축하와 부러움을 받는 것도 잠시 앨리스는 이상해진다.

"다른 성을 사랑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들은 미스터리하고 고요한, 내향적이고 수수께끼 같죠. 내면이 깊다고요. 굉장한 발전인 것 같아요. 결합을 사랑할 수 있는 다른 성으로 보다니 말이에요. 세 번째 성인 셈이죠. 좀 더 이해해 주셔야 해요." (도저히 몇 페이지에서 발췌한 건지 못 찾겠다. 찾으면 수정 예정)

소설은 필립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여자친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텍스트로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앨리스가 이별을 선언하자 슬픔 보다 황당함과 걱정이 앞선다. 이유는? 앨리스는 결함은 하나의 관념일 뿐인 결함이라 부르는 웜홀을 사랑했다. 인간도 여성도 남성도 아닌 무엇에게 극도로 끌리는 마음은 편견 없이 매력을 느끼는 대상 자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사랑은 일방향이다. 결함을 만지려고 하면 밀어내고, 자신을 던지려고 하면 상처투성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만 앞선 앨리스는 두 맹인 물리학자(에반, 가르스)까지 필립에게 맡기며 시끌 복잡한 마음을 들쑤신다. 앨리스가 결함에게 상처받을 동안 필립도 방황한다. 시련을 잊기 위해 술집에도 가고, 앨리스와 가까운 교수도 만나며 이해해 보려고 한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주의!

"새로운 우주는 현실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형편없었다. 결함은 세계를 만들려고 했지만 필요한 재료를 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앨리스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매력을 느낀 요소들로만 학교 가 만들어져 있었다. "

p 322



결함은 필립과 소통하면서도 취향도 비슷했다. 앨리스를 데려간다고도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 필립이 테이블 너머 틈 사이로 건너가 본 결과 결함은 일종의 평행우주였다. 앨리스의 취향이 반영된 또 다른 세계. 필립의 영향이 컸으며 그걸 결함에게 물려준 것이다. 결함이 필립과 말이 통했던 것도 필립의 반영이었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 앨리스는 자신을 사랑한 걸까, 사랑하는 필립의 또 하나의 우주를 사랑한 것일까. 복잡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필립은 깨닫는다. 앨리스의 사랑의 크기와 농도를..


참! 책 표지에 진심인 황금가지 디자이너가 또 일을 벌였다. 소설 내용과 찰떡인 표지에 박수. 책등은 마치 <인터스텔라>에서 아빠가 차원이 다른 곳의 딸과 소통하려고 책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듯하다. 시간과 공간의 틈이 시각적으로 재현된 프리즘, 표지의 프리즘은 만져보면 미세한 음각이 느껴진다. 실제 나무 테이블이 있고 그 너머는 블랙홀처럼 세상을 빨아들일 것 같은 큰 구멍이 지키고 서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