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
닌겐 로쿠도 지음, 이유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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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음이 순수해지는 러브 스토리를 읽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후 변치 않는 믿음이 각박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는 이야기다. 제목은 《여름의 너에게 겨울에 내가 갈게》. 무슨 의미지?라고 반문하게 만드는 일본 특유의 문장이다.

초여름 같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미대생 유키는 문학도 나쓰키와 썸 타게 되지만 얼마 후 차가운 반응을 내보인다. 영문을 알 수 없던 나쓰키는 이내 실망하지만. 그럴 새도 없이 유키가 종적을 감추어버려 헤어 나올 수 없는 슬픔에 몸부림친다. 한낱 엔조이 상대로 봤던 걸까? 생각이 생각을 만들어 버릴 때 끝도 없는 구렁텅이로 이끌 때쯤,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나쓰키는 당황한다.

유키가 겨울 동안 SNS 상에도 현실에서도 급작스럽게 사라진 이유는 희귀병 때문이었다. 유키의 본가에 당도한 나쓰키는 식물인간처럼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유키를 보고 더욱 깊어지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유키의 병이 발병한 건 5살 때부터라고 한다. 10월 말쯤 잠들면 다음 해 2월쯤 깨는 루틴이 반복되지만, 폭설이 오거나 그해 겨울이 길면 1년도 넘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가족의 삶은 유키에게 맞추며 끝나지 않을 희생의 길을 걸어왔던 거다. 유키의 모든 것을 알게 된 나쓰키는 갈등하지만. 유키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깨달으며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긴 터널을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가게 된다.

 

소설은 작가 '닌겐 로쿠도'가 실제 투병생활을 하면서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었던 순간을 펜 끝으로 전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희귀병, 투병을 소재로 한 일본 영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남은 인생 10년> 등 유독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나 소설, 만화가 인기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작가의 삶이 캐릭터와 설정에 녹아들어 가 절절한 마음을 전한다.

읽으면서 내내 차가운 기온 때문에 문제가 생겨 잠을 자게 된다면, 일 년 내내 여름만 있는 나라로 이민 가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사계절인 일본을 떠나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일생을 잠으로 보내다가 죽는다?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인생은 참 억울할 만한 일이다.

그보다 더 기구한 사람은 남자친구 나쓰키가 아닐까. 여름에만 함께 할 수 있고, 그것 마저도 매해 불투명한 설정은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처럼 퍽 슬퍼져 안쓰러웠다. 일본에서 곧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 질 것 같아 내심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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