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집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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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를 기억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소격효과'. '낯설게 하기'혹은 '제4의 벽 깨기', '소외 효과' 등으로 불리는 이론을 만든 사람이다. 연극에서 주로 사용되는 효과로 극의 몰입을 방해하여, 관객이 스스로 질문들 던지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게끔 한다. 영화에서 가끔 카메라에 말을 거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면 브레히트를 떠올린다.


독일의 극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시인이기도 했다니. 역시 글쟁이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쓴다는 데 공감하게 되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 당시 위생병으로 복무, 이후 연극과 창작의 길을 떠났다. 히틀러 정권 시절 14년 동안 망명 후 1949년 동독에서 정착해 활동했고 1956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2,300편이 넘는 시를 남겼다.

암울한 시대에

암울한 시대에

노래가 있으랴?

암울한 시대에 대한

노래가 있으리

책은 그중 몇 편을 꼽아. 그가 시대와 역사에 침묵할 수 없어 쓰라린 마음으로 펜을 잡은 고뇌가 서려있다. 수많은 시 중 절반 이상이 사후에 빛을 보았다고 한다. 뒤에 번역가 해설 부분이 너무 잘 되있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 공진호 번역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는 인간의 욕망은 선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 정글의 법칙이 문제라 말했다. 기존 사회 질서가 전복되어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며 끊임없이 부조리를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도 공산당에 입당하지는 않았고, 성경을 품에 안고 놓지 않았다. 인간을 향한 마음은 종교를 떠나 예수와 동일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소외된 사람들을 시 소재로 삼으면서 인류애와 사명감을 잃지 않으려 했다.

시에 안 좋은 시대

물론 안다. 행복한 사람만이

인기 있다는 걸.

그런 사람의 목소리는

듣기 좋다.

얼굴은 밝다.

뜰에 있는 주접든 나무가

안 좋은 토양을 암시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주접들었다고 놀린다

그럴 만도 하다.

해협의 초록색 배들과 펄럭이는 돛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고 많은 사물 중 하필이면

어부의 찢긴 그물만 보인다.

나는 어찌하여

구부정하게 걷는 마흔 살의

마을 아낙네 이야기만 하는가?

처녀의 가슴은

예나 지금이나 따뜻하거늘.

내가 운율이 맞는 노래를 쓴다면

마치 들떠 떠드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마음속에 서로 다투는 것이 둘 있으니, 그것은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과

페인트공이 연설하는 소름 돋는 광경이다.

하지만 후자만이

나를 책상으로 가게 만든다.


이 책의 제목인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은 이 시구에서 따왔다. 여기서 페인트공은 히틀러를 뜻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전원시를 쓰지 못하는 이유다. 정치적인 상황(토양)이 좋지 못해 주접든 나무(브레히트)가 생겼다고 했다. 얼굴은 시를 암시하고 토양 탓이라도 사람들이 그럴 만도 하다고 했지만. 찢긴 그물을 통해 자연을 찬미하는 시를 쓰지 못하는 이유를 말한다.


시의 시는 대부분 구연을 감안해서 썼다고 한다. 그것을 가리켜 'Gestisch'라고 한다. 제스처. 시가 극에서 활용된 탓인지 읽다 보면 영화의 장면처럼 떠오르는데, 바로 연극이나 영화의 대본으로 확장해도 괜찮겠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브레히트와 연이었던 여인이 참 많기도 하더라, 사랑도 시대를 고민했던 것처럼, 치열하게 했던 것일까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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