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
앨러스데어 그레이 지음, 이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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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선함은 내가 기준이 될 수 없어, 벨.

나는 너무도 약한 사람이야.

나는 블레싱턴 장군만큼이나 가여운 놈이라고.

우리 두 사람 모두를 경멸할 마음의 준비를 해 둬. "

P318

이름도 독특한 그리스 출신 '요르고스 란티모스'감독의 얼마 만의 신작인가. 참 좋아하는 감독이다. 사람을 참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데 과한 서늘함이 섬뜩함이 되기 전 적당히 맺고 끊음을 할 줄 안다. 불분명한 경계를 즐긴다. 불쾌한데 자꾸만 보게 되는 매력. 재작년에 본 단편 <니믹> 이후 괴상하고 이상한 영화를 오래 기다려 왔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호흡 맞춘 '엠마 스톤'과 <Poor Things>(푸어 띵스)를 완성했다. '윌렘 데포'가 창조주, '마크 러팔로'가 던컨을 맡았다. 엠마 스톤은 차기작 <AND>(앤드)에도 출연한다. 벌써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 3번째 협업이다.

아..기여코 이 소설을 영화화하는구나!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소설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기이한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그는 19세기의 문건을 몰래 빼돌려 편집해 재출간한 인물로 소설 속에 등장한다. 전지전능한 작가이자 문서들을 편집한 편집자인 셈. 빅토리아 풍으로 쓴 20세기 패러디 소설쯤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소설은 무척 방대한 지식과 상상력, 형식 파괴를 넘나든다. 다량의 문서는 편지, 일기, 보고서, 인물 소개, 삽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의과생(아치볼드 맥캔틀리)의 회고록이자 한 여성 '벨라 백스터의 사용설명서', 종의 기원, 완벽한 뻥이다.



저자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완벽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액자식 구조라고 딱 잘라 말하기 힘든 두껍고 깊이 있는 문화인류학 백과사전 같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시체로 완성한 괴물은 사실 이름이 없다. 자기랑 같은 종족을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거절하고, 이에 따라 비극이 일어난다.

그러나 벨라는 아름답다는 '벨라'와 종소리 '벨(Bell)'이란 이름을 얻는다. 자신의 아버지 고드윈은 '갓(God)', 정혼자 맥켄들리를 '캔들(Candle)'이라 부른다.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성장 방법도 특이하다. 계속 남성을 만나면서 언어와 지식을 업그레이드하게 된다. 성인 여성의 몸에 태아의 뇌를 삽입한 탓에 어눌한 말투와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일삼는다. 하지만 놀랄 만큼 성욕이 왕성했는데 주변의 남성들이 희생양이 된다. 성차별, 제국주의, 빈부격차, 계급사회, 공중보건, 신의 유무, 여성참정권, 노동권 등을 논쟁을 체득하며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고전이 비유된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소설의 모티브이자 레퍼런스이며, 에밀리 블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고드윈(갓)과 벨라의 운명을 암시한다.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와 캐시는 비극을 맞기 때문. 던컨과의 운명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의 악마 메피스토와 젊음을 되찾는 파우스트로 관계로 묘사한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멀리 떠나 실종 상태였지만 벨라는 의사가 된다. 소녀, 엄마, 매춘부를 돕는다. 또한 현대적인 피임법을 알려준다. 괴물이 될 뻔했지만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성장해 사회의 도움이 되는 여성이 된다. 페미니즘의 해설도 가능하다.


-------------------스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맥켄들리가 쓴 허구의 이야기 속 인물일 수 있다. 빅토리아 맥켄들리가 훗날 남편이 쓴 문서에 추후 첨부한 문서(자식들에게 남긴)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실 벨라는 동성애자였으며 고드윈을 사랑했지만 유전된 성병으로 육체적 결합을 원치 않아 둘은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이다. (사실은 프랑켄슈타인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존재여서 일 것으로 추측)

그러다가 고드윈을 존경하는 의과대생 맥켄들리를 만나 성적 쾌감을 느낀다. 진정한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남편으로 맞아들여 대를 이어갔던 것. 중간에 쾌락을 실험해 보고 싶어 웨더번과 밀월여행도 떠난다. 나이가 들어 지금까지의 일과 남편이 남긴 상상을 덧붙여 '믿거나 말거나' 식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전 세기의 문서를 발굴해 편집자의 소개로 소개하는 형식을 읽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기묘한 형식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야기다. 그로테스크한 삽화 또한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인간의 장기, 뼈, 성기 등을 묘사하고 있다. 공개된 영화 스틸과 예고편을 보니 벨라 외모가 거의 엠마 스폰 판박이라 놀랐다. 고드윈의 외모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묘사한 것도 원작의 오마주로 보인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소설이 소설 속 소설, 소설 속 편지, 문서 등으로 쓰인 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도 비슷한 형식이다.

물론 《가여운 것들》은 90년대 쓰였지만 19세기 스타일로 쓴 흥미로운 소설이다. 독특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재해석, 영화 원작 소설을 원한다면 추천한다.



✔️본 리뷰는 도서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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