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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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후미의 관계를 표현할 적당한 말, 세상이 납득할 말은 없다.

 

거꾸로 같이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산더미처럼 많다.

 

우리가 이상한 걸까.

 

그 판단은, 부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하기 바란다.

 

우리는, 이미 거기 없으니.

 

P 356

 

 

 

얼마 전 영화 <유랑의 달>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일본은 상상이상의 소재의 이야기가 많다. 결핍이 있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이야기를 이런 소재로 풀어낸 걸까. 한국과는 다르게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것을 추구하는 일본. 책도 많이 읽는 민족이다. 매년 서점 직원들이 꼽는 책이 있는데 이 책도 그중 하나였다. 2020년 서점 직원이 꼭 읽어 보라고 강력 추천했던 찐후기의 숨겨진 보물이란 뜻이다. 서로의 결핍을 발견하고 포근히 안아 주는 형용할 수 없는 관계, 좀 다른 이야기를 원한다면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굉장한 비밀을 품은 슬픈 이야기였다. 세상의 편견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구원하고 자아를 되찾는 모습을 그린다. 151분이란 러닝타임 동안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두 사람을 오롯이 지켜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사랑, 의지, 신뢰, 우정, 유대 등 어떤 단어로도 환산할 수 없는 사라사와 후미의 관계를 다룬다. 데이트 폭력, 디지털 타투 등 무거운 소재를 따뜻한 문체로 사로잡고 있다.

 

 

후미와 사라사는 모두 사랑에 굶주렸고, 대안 가족이 되어간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고 누군가를 어떠한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걸 이 작품으로 배웠다. 정신적인 교감이 이런 걸까. 육체적인 스킨십이 없다고 해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플라토닉 사랑 혹은 가족의 새로운 모습을 <유랑의 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작 소설과 영화 무엇이 다를까?

 

 

사람들은 19살과 9살 남녀 만남으로 색안경을 끼고 봤다. 로리콘(로리타), 스톡홀름 콤플렉스로 치부해 버렸지만. 둘이 세상에 전하지 않은 말이 있었다. 방송, 유튜브, 언론에서 떠드는 정보가 진짜가 아님을 둘만 알면 된 거다. 세상이 뭐라고 떠들던 떳떳하면 된 거다. 누가 뭐라고 떠들든 외로움에 지쳤던 둘은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이상일 감독이 <분노> 이후 히로세 스즈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번 더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홍경표 촬영 감독과 작업해 빼어난 미장센을 자랑한다. 구름과 햇살, 바람을 화면에 담은 흔들리는 커튼의 나른함과 포근함이 스크린을 뚫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영상이 빼어나다. 극장에서 봐야 오롯이 전달받을 수 있는데 아쉽게도 금방 내려갔다. 오늘부터 왓챠에서 스트리밍되니 관심 있다면 찾아보는 걸 추천한다.

 

 

더할 나위 없이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해도,

 

나는 후미와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하물며 자고 싶다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는다.

 

후미와는 그저 함께 있고 싶을 뿐이다.

 

그런 기분에 붙일 수 있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P294

 

 

 

'나기라 유'의 소설 유랑의 달은 영화에서 상징적으로 풀어낸 장면이 소상하게 나와있다. 사라사(히로세 스즈)와 후미(마츠자카 토리)의 전사(캐릭터 역사)를 좀 더 알고 싶어 단숨에 읽어버렸다. 결말도 영화는 둘의 상황을 보여주지 않지만, 소설은 잠시 맡아주었던 리카도 성장해 셋이 연락을 주고받는 시간까지 보여준다. 들키면 숨어버리고 떠나버리는 삶을 반복하지만 서로가 있어 안심인 사이가 되어 안온함을 느낀다.

 

 

차고 기우는 달의 속성과 닮은 둘. 어디라도 유유히 흘러 다니는 둘의 관계를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사라사는 calico의 일본어다. 훗날 카페를 운영하는 후미의 가게 이름이 된다. '사라사' 포르투갈어에서 기원한 무늬 염색 직물을 말한다. 발음이 너무 예쁘고 히로세 스즈와 잘 어울렸다.

 

 

특히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는 후미의 나체 신은 소설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라 극장에서 혼자 대관했는데 너무 놀랐다) 절제된 문체로 서술할 뿐이다. 그저 2차 성장이 나타나지 않고 병약하게 자라는 물푸레나무에 여러 차례 비교한다.

 

 

결핍으로 고립된 두 사람

 

 

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와 교육과 복지에 열심이던 어머니, 공부도 놀기도 잘하는 형과 남부럽지 않은 가정의 아들이었다. 육아서에 나온 대로 올바른 것만 먹고 입히던 어머니. 남들 눈의 의식했던 바른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을 리모델링을 했다. 마당에 물푸레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힘 없이 제대로 크지 않자 틀려먹었다며 뽑아 버렸다.

 

 

후미는 그 물푸레나무가 자신이라며 평생을 움츠러들며 살게 된다. 시들하고 희미하게 살면 제거 당해야 맞는 걸까. 그때 받았던 충격은 몸이 자라지 않는 후미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겼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성인 여성에게 사랑의 감정이나 욕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옷을 벗을 수 없어 항상 숨어들었다. 어린 여자아이들과 함께 있을 땐 오히려 편했다. 자신을 편견 없이 봐주었고 귀엽기도 했으니까. 신체적 결함을 부모에게도 말할 수 없어 감추고 다녔던 후미. 자신이 남들과 완전히 다름을 사라사를 만나고 확신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독서하고 있던 사라사를 만나 집에 데려온다. 사라사는 후미와 정반대 성격의 아이였다. 활달하고 규칙 없이 자유로운 모습에 후미도 고무되어 갔다. 사라사는 부모와 영화 <트루 로맨스>를 보고, 때로는 낮술을 마시는 자유분방한 집에서 컸다. 이모는 이런 엄마를 늘 걱정했는데 아빠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둘은 사라사 앞에서 늘 키스했고 사랑을 표현했다. 위화감 없이 사라사도 행복하게 지냈지만, 아빠의 죽음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엄마는 사라사를 이모 집에 맡기고 떠나 버렸다.

 

 

사라사는 이모 집에서 사촌의 추행에 잠 못 이루는 힘든 삶을 살게 된다. 밤마다 문을 열고 들어와 몸을 더듬는 추태에 가출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와 행복하던 때가 그립다. 그러던 중 비 오는 날 후미를 만났고, 무해한 어른과 며칠을 보내며 행복감을 맞이하게 된다. 밥을 먹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되고, 자고 싶은 만큼 늦게까지 자도 괜찮았다. 그가 로리타라는 소문을 들었지만. 사라사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후미는 등 떠밀어 보내지 않았다.

 

 

세상은 둘 사이를 순수하게 봐주지 않았다. 온라인에 제멋대로 가십의 소재로 전락하고, 후미는 15년을 작은방에서 갇혀 지내게 된다. 두 사람은 15년 만에 만났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른이 된 사라사는 지금보다 더 많은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야 했다. 아이스크림을 마구 먹던 시절 사라사는 이제 더 이상 밥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다. 뭐라고 할 어른이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남자친구의 강압적인 태도에 불만이 쌓이지만 쉽게 절연할 수 없어 질질 끌려다녔다. 이후 수위가 높아지는 데이트 폭력을 겪다가 후미에게도 도망치게 된다.

 

 

책을 읽다가 소설에서 등장하는 토니 스콧의 <트루 로맨스>가 너무 궁금했다. '타란티노 로맨스'라는 부제가 붙을 정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인가 보다. 해피엔드 결말을 주장한 감독과 언해피를 주장한 각본가가 치열했다고 소설에 나온다. 두 종류의 엔딩을 찍었다고 한다. 언해피판은 디렉터판 특별 영상으로 담겼다고 하니 몹시 궁금해졌다. 이번 주말에 꼭 봐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마다 생각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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