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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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2018년 야생동물 연구가이자 과학자인 일흔 가까운 할머니 '델리아 오언스'가 펴낸 소설이다. 평생 야생을 연구해와서일까.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소녀 '카야'를 창조했다. 아름답고 가냘픈 모습을 한 보호해야 할 것 같은 소녀의 외형 속에는 강인한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카야를 상징하는 단어는 '고립', '외로움', '자립' 일것이다.


할머니 감성으로 썼다라고는 느낄 수 없는 소녀 감성이다. 습지에 사는 다양한 생물에 대한 짧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부모의 보호와 보살핌이 절실한 7살 아이가 혼자 습지 오두막에서 생존해야 했던 야생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버려진 소녀의 성장


전쟁의 상흔을 안고 돌아와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빠. 이를 견디다 못해 엄마는 집을 나갔고 차례로 언니 둘과 바로 위 오빠도 도망쳤다. 아빠와 단 둘만 남겨진 카야는 무서웠지만 다정한 시간을 보냈고 차차 적응하며 자라났다.


하지만 아빠 마져도 딸을 버리고 떠나고, 혼자가 된 카야는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다. 부모, 형제도 없이 습지에서 지금껏 혼자 살아온 여자 아이, 늪지 쓰레기, 버림받은 아이, 단 하루 학교를 다녔던 아이 등. 지역사회는 카야를 품어주지 않는다. 몇 차례 학교 입학과 습지 개발을 위해 땅 소유주를 물으러 온 것 말고는 소꼽친구 테이트와 나쁜남자 체이스가 드나들었을 뿐이다.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는데..


소설은 멀티 장르를 표방한다. 성장, 사랑, 서스펜스, 스릴, 치정 드라마, 자연 다큐멘터리, 법정물 등. 두 시점이 교차되지만 정신 없거나 어렵지 않은 타임라인이다. 무지했고 순수했던 시절 만난 테이트에게 글을 배우고 책으로 공부하며 세상과 소통했다.

둘은 습지 생물을 관찰하는 취미가 같았다. 카야에게 테이트는 친구 이상이었다. 가족, 선생님, 어쩌면 연인으로 생각할 법한 삶의 모든 것이었다. 세상과 연결해준 건 테이트였지만 야생에서 모든 것을 배워나갔다. 가끔 먹을 것과 연료, 따뜻한 정을 품어주는 몇몇 주민도 작은 도움을 내어 준다.


하지만 대학 입학을 위해 테이트가 떠나자. 또 다시 버림 받았다는 절망감은 카야의 마음에 단두질 해댔다. 이후 이 동네의 인기남 체이스와 강렬한 사랑에 빠져 몸도 마음도 다 내어주었다. 별도 달도 다 따줄 것처럼 행동했던 체이스는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을 늘어 놓기 시작했고, 따른 여자와 결혼했음에도 카야를 향한 집착을 놓지 못한다. 이로 인한 다툼과 폭력, 그리고 이후에 일어난 일까지. 소설은 파란만장 했던 여성의 성장과 자립에 미스터리한 사건을 끼워 재미를 더했다.


끝까지. 이 아름다운 여성이 정말로 사람을 죽였을지 끈을 놓지 않고 읽게하는 페이지터너다. 결과를 알게 되는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을 때, 전율과 충격은 짜릿한 반전으로 즐거움을 안긴다. 무엇보다, 도시도 아닌 야생에서 여성 혼자 자립할 수 있다는 꿈을 현실로 보여준다.




곤충 암컷은 짝직기 상대인 수컷을 잡아먹고,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포유류 어미는 새끼를 버리며, 많은 수컷이 경쟁자보다 더 잘 파정하기 위해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방법들을 고안해낸다. 생명의 시계가 똑딱똑딱 돌아가는 한, 천박하건 무례하건 아무 상관없다. 카야는 이것이 자연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 그저 모든 위험요소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창의적인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인간이라면 물론 그보다는 훌륭하게 행동해야겠지만 말이다.

p229




관찰하는 습관과 천부적인 그림 실력이 만나 삽화가로 성공한다. 출판을 통해 인세를 받으며 먹고살아갈 방법은 만든다. 훗날 저명한 생태학자이자 삽화가, 시인이 되어 전 세계 소녀들의 롤모델로 생을 마감한다. 물론 '살인'이라는 윤리적인 판단을 유보해야하지만. 자연에서 교미 후 상대방을 잡아 먹는 일은 생존 본능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반딧불

그를 꼬드겨내는 건

밸런타인의 불빛을 깜박이듯 쉬웠지

하지만 숙녀 반딧불처럼

그 불빛들에는 죽음의 은밀한 부름이 담겨 있네

마지막 터치,

끝이 아니야

마지막 발자국, 덫

아래로, 아래로 추작하네

그 눈이 내 눈을 꼭 붙들다

끝내는 나른 세상을 보지

그 눈이 달라지는 걸 봤어

처음에는 질문

다음에는 해답

마침내 끝

그리고 사랑 그 자체가 스쳐지나

그게 무엇이든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가네

A.H (어맨다 해밀턴=카야= 캐서린 대니얼 클라크)


영화와 소설의 다른점


이 책은 출간 즉시 큰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헬로 선샤인 북클럽' 운영자 리즈 위더스푼이 북클럽 추천작으로 소개하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9위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내침긴에 리즈 위더스푼은 제작에도 참여 했다. [노멀 피플]로 MZ세대 반향을 일으킨 '데이지 에드가 존스'가 마시 걸 카야를 맡았다. 영화를 먼저 본 후 이미지에 매료되어 딱딱한 활자를 깊게 읽어보고 싶었던 나는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다.


영화는 소설을 거의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 왔다. 전 남자친구 체이스(해리스 딕킨슨)를 죽인 일급용의자가 된 카야(데이지 에드가 존스)가 재판을 받기까지의 시점과 어린 시절 가족에게 버려진 7살 꼬마가 오빠 친구였던 테이트(테일러 존 스미스)와 첫사랑을 이루는 시점이 교차된다.


그밖에 카야를 도와 주거나 해친 인물을 빼거나 합쳤고, 습지 생태계를 탐구하는 과정이 영화에서는 축약되었을 뿐이다. 결말까지 똑같았지만 빠져들 수 밖에 없는 탄탄하고 스릴넘치는 이야기가 원작까지 읽어보길 추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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