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지음 / CRETA(크레타) / 2022년 10월
평점 :
예술계의 크로스오버는 대세다. 이 책을 받았을 때도 사실 그런 기분이었다. 클래식 전공자가 미술을 보고 영감 받아쓴 책이겠거니 하는 선입견. 하지만, 처음부터 읽지 않고 아무 곳이나 펼치는 습관(소설은 빼고)으로 읽었던 부분에서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분 대체 뭐 하시는 분이야?"
하나만 잘해서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N잡러를 일부러 꿈꾼 건 아니었지만 닥치는 대로(라고 쓰고 물 들어올 때라고 쓴다) 이것저것 해야 하는 세상이다. 정년퇴직도 짧아지고 평생직장도 없다. 삶은 길어졌고 그 시간을 뭐로 버틸지 고민하는 것도 힘들다. 평생 놀고 싶다고 생각해도 막상 며칠 놀면 지루하다. 뭐든 일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렇게 된 건지 다시 갈피를 잡아보자. 이 말은 본질은 현대 사회는 아니 점점 더 한 가지만 잘해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소리였다.
이수민 저자는 여러 직업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명칭 아래 이 책을 썼으니 작가, 클래식에 영감받아 그림 그리니 화가다. 사회자나 공연 해설자도 오래 했단다. 원 소스 멀티 유즈로 다방면에 재능 있는 분이었다. 책 곳곳에 자신이 작업한 작품도 같이 수록되어 있다.
앞서 말한 우연히 펼쳤다가 충격받았던 부분을 소개하겠다. '신체의 풍경'이란 제목의 1장 그림에 음악 더하기 섹션이었다. 우리나라 1세대 전위예술가로 자기 몸을 중심축으로 삶아 그리는 이건용,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발레리노 바츨라프 니진스키, 그리고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드뷔시다.
특히 20대 후반에 조현병을 진단받고 무대에 오를 수 없던 러시아의 남성 무용수 니진스키의 삶과 목신(판)과 드뷔시까지의 연결이 기묘하게 다가왔다는 거다. 그를 두고 평단은 "10년은 성장했고, 10년은 발레를 배웠고, 10년은 무대에서 춤췄다."라고 할 만큼 미술, 음악, 무용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안무가로도 활동했는데 데뷔 작품이 드뷔시의 음악 '목신의 오후'다. '목신의 오후'는 드뷔시가 프랑스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가 쓴 동명의 아홉 페이지의 장편 시에 영감받아 1894년 작곡한 곡이다. 뜨거운 여름날 욕정에 젖은 판의 모습이 몽환적이고 성적이다. 반복적인 테마 사용, 오케스트라 작곡법의 전통을 지키면서 자유로움을 추구한 파격적인 음악을 니진스키의 독창적인 안무와 만나 시너지를 이룬다.
책에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곡 '봄의 제전(1913)'까지 큐알코드화 되어 있는데 유튜브로 보다 보면 당시 관객이 받았을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금 봐도 잊을 수 없는 안무와 음악, 표정이 충격적이기 때문. 또 놀란 것은 스트라빈스키와 샤넬의 염문을 영화로 만든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에 매즈 미켈슨이 나왔다는 것! 음악과 무용에 매료되고 있는데 매즈 미켈슨이 나와 놀랐고 재미있었다. 두 예술인의 삶에 대해 궁금하다면, 매즈 미캘슨의 팬이라면 꼭 보길 권한다.
영화 오프닝 부분인데 영화 <미드 소마>가 생각나기도 한다. '봄의 제전'은 20세기 최고의 음악이라고도 불리는데 관객들은 공연 도중 야유를 퍼붓거나 중간에 퇴장하기도 한다. 당시 매우 충격적이라 호불호가 갈린 듯하다. 소재가 '봄'인데 그로테스크한 안무가 죽음이 드리워진 공포가 느껴지기 때문일 거다. 발레지만 원시적이고 흡사 종교의식 같다. 불협화음이 느껴지는 혼란과 어려운 음계와 악기의 테크닉이 압권이다.
본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