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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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내가 허지웅 작가 글을 처음 접했던 건 씨네 21이었다. 평론가, 작가, 방송인 등 그 밖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던 그가 돌연 병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했었다. 그래서 더욱 예전의 칼칼하던 청양고추의 매운맛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아직도 까칠하고 날카로운 필체의 허지웅이 반가웠다. 과연 악성림프종으로 힘들었던 그 시간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책은 그 궁금증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전반부는 병을 그야말로 '견디며' 보낸 시간을 써낸 힘든 고백서다. 읽는 사람도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기묘한 체험이었으며, 온전히 아픔을 나눌 수 없지만 한 스푼의 공감이 잠시나마 삶과 죽음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현재는 병을 이겨냈지만 재발하면 다시는 치료를 받지 않을 거란 말이나, 오기로 버틴 요가 수업, 같은 병을 앓는 환자의 병문안 (이 에피소드는 두 번에 걸쳐 자세히 다룬다) . 허지웅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에피소드를 읽는 것도 즐거웠다.

 

 

가장 좋았던 것은 다시 영화와 소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언급된 작품을 보고 읽지 않아도 궁금함을 유발한다고나 할까. 존 허트와 김영애 배우에 관한 애도문을 읽고 영화가 무척 궁금해졌다. 영화제목은 데이빗 린치의 엘리펀트 맨과 고영남의 깊은 밤 갑자기. 얼굴에 종양을 달고 있어 코끼리 맨이라 불리는 기구한 사연의 한 남성을 연기한 존 허트와 김기영 감독의 충녀만큼이나 섬뜩한 모습의 김영애를 만나보고 싶다. 영상자료원에서 봐야지 하고 체크해 두었다. 사람으로 인정 받고 싶은 남자와 점점 미쳐가는 여자가 궁금해졌다.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실존에 환멸을 느낀 두 사람이 선택한 극단은 충격적이기도 하고 일본 특유의 고립감이기도 했다.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허지웅에게 이 두 죽음은 비슷한 점을 찾아보는 계기기도 했을거다. 슬픔과 예민함을 가진 쪽으로 기우는 어쩔 수 없는 일. 다자이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 했던 미시마의 고백이 허지웅에게도 잘 어울린다 생각 들었다.

 

 

그 밖에도 <라라랜드>, <쓰리 빌보드>, <공동정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은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떠올려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무엇보다 제노모프를 중심으로 <에이리언> 가계도를 정해준 통찰, 자신의 최애 영화인 <스타워즈> 정리도 무척 감사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인용해 구세대와 현세대의 반복되는 충돌과 지금 세대에 대한 연민과 충고도 적절히 버무려 준다. 속이 다 후련해진다.

 

 

그리고 젊은 세대를 걱정하기도 한다. 권력을 가진 꼰대가 청년의 무모함과 젊음을 속박해도 아나킨 스카이워커에서 다스 베이더로 타락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제다이가 말하는 마음의 평정 포스를 회복하고 객관성을 유지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버틴다면 반드시 당신의 날이 찾아올 거라 응원하다. 역시 허지웅 다운 위로다.

 

 

잠시 허지웅처럼 니체를 옆에 끼고 사는 것도 퍽 괜찮을 거라 상상했다. 죽음의 가까이에 가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종교를 초월한 소중한 무엇. 허지웅은 크게 아픈 후 그 무엇을 발견한 것 같다. 유년 시절부터 괴물을 좋아했다고 한다. (나도 퍽 좋아함) 지금 돌아보니 그들에게 끌렸던 건 연민이었는지 압도였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큘라 백작처럼 사람과 섞이고 싶어 했던 과한 행동들과 영웅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반드시 세상에 필요함을 충분히 설득한다. 악당이 있어 영웅도 대접받고 빛나는 거니까 말이다. 그렇게 괴물 덕후로서 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경외도 빠트리지 않는다.

 

 

누가 성덕 아니랄까 봐 영화에 대한 TMI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가 던지는 살고 싶다는 농담이 마음에 와닿는다. 농담을 가장한 진담인지, 정말 농담인지 모를 글들이 진솔하게 쓰여 있다.

 

 

본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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