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앤 마크스 지음, 김소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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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다큐멘터리를 본 후 무명의 사진작가를 알게 되었다. 대체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일까? 자신을 꼭꼭 숨긴 사람, 필름을 강박적으로 남긴 사진사, 독특한 유모, 비밀스럽고 유별난 사람, 큰 키에 프랑스 억양을 쓰는 독신녀, 수집광 등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개다. 그녀를 알던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하고 있기도 했다. 단순히 정신질환 중 하나 인 저장장애(호더)가 있는 한 가지 모습으로 규정할 수 없고, 모순적이며, 다층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 중 일부는 이렇게 회상하기도 한다. 이상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있었던, 주의를 끌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너무나 다른 평가에 헷갈리기 시작했다. 대인 관계를 거부하지만 않았더라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을 거다.

 

조용한 거리의 사진사 '비비안'

 

비비안 마이어를 세상이 발견한 건 2007년 경매장을 찾은 한 남자가 우연히 수십만 통의 필름이 발견되면서 시작되면서였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네거티브 필름, 사진들, 감독이자 발굴자인 '존 말루푸'는 작가를 찾기 시작했다.

 

누구였고, 어디 살았으며,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대체 이 멋진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거지? 궁금증은 커져갔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그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 말고 또 다른 사진 구매자 '제프리 골드스타인'과 아카이브 작업을 해갔다.

 

그 과정이 영화에 담겼고 가족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으나 'TV는 사랑을 싣고'처럼 명확한 정답을 찾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영화에서 담지 못한 더 많은 정보가 이 책에 담겼다. 비비안이 사진을 찍은 이유와 목표, 가족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 준 전기다.

 

한 사람의 생애를 위해서는 주인공의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상과 관심, 세상을 보는 시각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장과정과 가족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만 한다. 비비안 마이어를 추적해야 한다. 비비안은 어떤 가정에서 컸을까?

 

불운했던 가족, 모든 것의 시작

 

 

가계도를 그리는 건 그 사람의 역사를 따라가는 일이다. 비비언 마이어 가(家)는 대체로 흐릿했고 우울했으며 안타까웠다. 부모의 양육 거부와 학대, 폭력, 알코올과 약물 중독, 정신질환, 불법 중혼 등으로 얼룩진 그림자는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 3대의 불행은 바일과 외제니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 쪽은 독일계 어머니 쪽은 프랑스계였다. 비비안이 사진과 가까이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아무래도 외할머니인 상류층 입주 요리사였던 '외제니'의 영향이었을거다. 아버지 되기를 거부했던 외할아버지 니콜라스 바일 사이의 사생아로 태어났고, 그래서 어머니 마리는 비비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릴 적 비비안은 엄마가 나를 방치했다고 전했고, 외할머니 외제니와 이모 할머니 마리아의 뒤늦은 보살핌으로 살아갔다. 마이어 가(家)의 명맥이 비비안과 오빠 '칼'로 끊어졌다. 둘 다 결혼하지 않은 채로 자식도 없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유년기나 청년기에 비비안을 알고 있거나 가까운 가족과 교류한 사람을 찾아 정보를 수집할 수 밖에 없었다.

 

비비안의 사진 특징

 

로버트 카파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아서라고. 비비안은 누구보다도 은밀히, 가까이 피사체에 다가갔던 사람이다. 비비안의 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세밀한 희로애락은 그 사람만의 필터가 되어 준다. 인간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아름다움과 유머가 비비안 사진의 특징이다.

 

자신처럼 가난하거나 아픈 사람, 우는 아이, 죽은 동물들 등을 비참함을 소재 삼아 거리의 사진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아마 답답한 삶 속에서 유일한 숨통은 사진기를 통해서 였지 않았나 짐작해 볼 수 있다. 사진뿐만 아니, 당시 정치적 상황이나 범죄에도 관심이 많았다. 유명인이나 셀카도 많이 찍었다. 셀피가 흥미로운데 요즘 대부분의 셀피 기법이 담겨 있다. 유독 화가의 그림에 자화상이 있는 것처럼 자연, 정물, 건물을 지나 자신에게 향하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모델료를 아낄 수 있고, 언제나 불러내 포즈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비안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온기, 유머도 잃지 않았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엉뚱하고 기괴한 것을 쫓는 어두운 면이 많던 사람이었다. 때론 정이 넘치고, 기자처럼 사건 현장을 찾아 기록하는 대범함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강박적으로 인화하지 않은 네거티브 필름과 신문을 그저 보관하는데 그쳤다. 인화한 사진은 대부분 보모로 일하던 중 친밀함을 쌓기 위해 가족을 찍거나, 엽서를 만들기 위한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했다.

 

비비안은 생전 반 고흐를 언급했다. 잉어 레이먼드라는 사람에게 "살아 있을 때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죽은 뒤에야 인정받는 것이 예술가들에게 흔한 일이라" 말했다고 한다. 미술계에서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자르고, 인쇄하는 작업도 사진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여긴다. 원본 사진만큼 중요하다는 것. 직접 고르고 편집한 사진이 많지 않아 전시나 가치 환산이 쉽지 않은 이유다. 예술적 가치가 있는 사진은 인화하지 않고 보관하기만 했다.

 

비비안은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만 전문 사진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상업적 판매를 도모했으며, 지인들에게 뿌리기도 했다. 그러다 정신질환이 발병해 병적으로 찍고 수집하고 집착했다. 하지만 재능을 알아차렸고 유명인을 동경하며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할 수 있음을 믿었다는 거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어느 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

 

영화에서 충족되지 못한 물음표가 어느 정도 상쇄되는 비비안 마이어 전기다. 비비안의 사진은 인물의 가장 처참하고 굴욕적인 순간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아마 강박적이고 절제할 수 없는 이끌림 탓이었지만 타인의 동의 없는 초상권과 기록 저장은 불쾌함을 넘어 불법인 셈이다. 하지만 고용주와 사이가 틀어지면서까지, 피사체와 싸우면서까지 기록한 탓에 과거와 비비안을 알 수 있는 아이러니다.

 

 

유언장도 없이 사망했기에 이후 사진이 전시되거나 유명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수 있다. 이런 문제까지 고루 생각해 봐야 한 것이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 섣불리 장담할 수 없지만 어쩌면 꽤 성공한 포토그래퍼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생전에 공개되었다면 훨씬 풍족한 삶을 외롭지 않게 보내지않았을 텐데 괜한 씁쓸함이 커진다.

 

 

참고로 성수에서 진행중인 전시를 추천한다.

 

 

본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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