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
민이안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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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흰 로봇 더미에서 깨어 나 공격을 받던 주인공. 위험에서 구해준 구형 안드로이드(달)과 트럭을 타고 여정을 떠난다. 딱히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몰라 따라나선 여정이었다. 사실 눈뜬 곳은 폐기 더미들의 무덤이었고 예전에는 올림픽 경기장으로 불렸던 곳이었다.

 

달은 나를 파란 피타입(4세대)이란 최신형 로봇이라고 말해준다. 나는 지극히 인간이라 믿는데 자꾸만 로봇이라고 하니 이상한 노릇이다. 달에 의하면 데이터가 일부 소실되어 명령어를 기억 못 하는 거라 한다.

 

달은 주인이 지어주었다며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사명이라는 명령어를 수행하려고 길을 떠난단다. 주인과는 어찌 된 영문인지 헤어졌다고 했다. 사연을 듣다가 덩치 큰 녀석이 괴롭히는 것을 도와주었더니 오히려 죄책감을 느낀다.

 

로봇도 사고할 수 있고 마음이 있는 걸까. 미리 심어 놓은 알고리즘에 의한 반응인지 알 수 없지다. 달은 나의 파란 피를 빗대에 '풀벌레'란 이름으로 부른다. 풀벌레? 조금 유치한 이름 같지만 기름이 아닌 물을 연료로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난 로봇이 아닌 인간이라니까!

 

그 과정에서 안드로이드의 죽음을 이끄는 '피톤의 광신도'를 알아간다. 피톤의 광신도는 인간 때문에 미쳐버렸다고 한다. 누가 버리고 간 걸까. 주인이 광신도가 되어버렸을지 모를 반려동물 새끼 악어(깨물이)도 같이 가기로 했다. 모험이 진행될수록 풀벌레는 자신이 기계가 아님을 확신한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이렇게 된 것뿐, 근본은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의 말은 사실일까?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는 제1회 공상과학소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민이안 작가의 데뷔작이다. SF 소설이 대부분 디스토피아를 다루는데 반해 이 소설을 따뜻함이 느껴진다. 안드로이드의 모조 인격 설정으로 인해 자기보다 약하거나 어린 안드로이드를 도우며 사고방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한다는 설정이다. 달이 풀벌레와 우정 비슷한 것을 나누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반대로 주인을 기다리며 허무함과 우울감에 빠져 자기 파괴적 최후로 이끄는 안드로이드도 존재한다. 즉, 안드로이드를 통해 인간의 잔인함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정체성을 깨닫기도 한다.

 

달과 나 그리고 깨물이는 '어린 왕자의 오아시스'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달은 갑자기 중단된 해양생물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후 인간친화형 안드로이드로 개조되어 씨앗 탐사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도 끝나면 달은 무엇을 해야 할까? 아마 피톤의 광신도처럼 우울감에 빠져버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것이 해결된다. 달을 걱정했던 주인이 등에 새겨 놓았다는 문구는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풀벌레는 사실 멸종된 인류의 마지막 냉동인간이었으며 재생성에 성공했지만 로봇의 명령어가 이식된 상태임이 밝혀진다. 말 그대로 반인반안 로봇이 된 것이다.

 

소설은 로봇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게 된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는 동시에 '어린 왕자'의 모티브를 가져와 상징적인 의미도 해석하게 했다. 미스터리한 풀벌레가 자기 과거를 밝히기 위해 떠나는 로드무비 형식을 통해 인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사랑, 인류애, 꿈, 성장, 우정, 협력 등)를 다시금 새겨볼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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