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도 없이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무레 요코 지음, 이현욱 옮김 / 경향BP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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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두 해 나이 먹다 보니 나도 곧 마흔이다. 예전에는 나이 드는 게 극도로 싫고 두려웠다. 아니, 예전도 아니고 작년까지만 그랬다. 하지만 올해 빼도 박도 못하고 곧 마흔이니 몸이 예전같이 않다. 나도 이제 중년이란 말을 듣게 생겼다.

 

그래서인가보다. 책 제목이 훅하고 들어왔다. '예고도 없이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라니.. 원제가 이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제목을 잘 뽑았다. 누구라도 공감하고 혹하고 집어 들 수밖에 없는 마성의 제목이다. 세상에 나이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드물고, 나이 먹음은 결국 죽음을 뜻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오십 대 후반의 미혼 작가 '무레 요코'가 쓴 에세이다. 우리나라에는 《카모메 식당》,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로 알려져 있고, 영화와 드라마로 영상화되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선택하게 된 오랜만의 힐링 책이었다.

 

여담이지만 요새 영화 쪽 일을 하느냐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아 출판사 서평단을 죄다 그만두었더니 오랜만에 의뢰 들어온 반가운 책이다. 안 그래도 올해부터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는데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 책이 나타나 퍽 놀랐다. 무슨, 운명 같은 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책속 사례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코가 간지러워 약간 긁었는데 딸기코가 되어 며칠을 고생했다거나, 귀가 간지러워 귀이개로 귀를 살짝 긁었을 뿐인데 병원에서 중이염 판정을 받았다든지, 머리가 간지러워 두피를 긁었는데 붉게 부어올라 원상태로 돌아오는 시간이 걸렸다는 등등. 중년은 이런 몸의 변화를 매일 겪으며 조심해야겠구나 깨달았다. 곧 이렇게 될 나를 생각하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함을 느낀다.건강은 언제나 과신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말이다.

 

읽다 보면 일본도 다를 게 없구나를 실감했다. 365일 중 350일을 집에서 밥 먹는다는 무레 요코는 3년 만의 외식 자리에서 음식 사진만 찍어대는 부부를 보고 화가 났다고 적었다. 일본은 안그러나보네 한국은 일상인데 말이다. 음식이 나오면 으레 "잠시만" 혹은 다들 알아서 건드리지 않는다. 사진 찍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제서야 맛있게 먹는다. 그게 약간의 먹방룰로 굳어졌다.

 

무레 요코가 느낀 불쾌함과 놀라움이 적혀 있다. 아마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 않을까 싶은 MZ 세대의 놀라운 행동 부분은 무릎을 치며 맞장구쳐주고 싶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2030대 친구들과 협업하는 일이 잦은데 내가 꼰대인지 놀랄 때가 너무 많다. 무레 요코는 본인의 경험과 지인의 경험을 몇 차례 적었는데 거의 모든 단어는 '무례함'이었다.



이 말에 무척 공감했다. 정말 안하무인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건 덤이다. 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이 커서 이기적인 건가, 부모가 교육에 문제가 있는 건지 배려라는 게 없다. 자기가 급하면 늦은 밤이나 주말도 상관없다. 자기 고민을 무턱 대로 털어놓는 일이 허다하다. 얻는 게 있다고 느끼면 아무 때나 연락해서 내 시간을 홀딱 뺏어갔다가 필요 없다 싶으면 감감무소식으로 일관한다. 원할 때만 빠른 연락 다른 때는 무시. 남에 대한 배려는 1도 없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잘났다는 사고방식이다. 답답해서 정말 죽을 뻔했다.

 

아무튼 각설하고 그녀가 중장년층으로 혼자서 살아가면서 겪은 지혜, 놀라움, 약간의 공포가 담겨 있다. 투덜거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은근히 파고드는 독설을 알릴 때면 아직 살아 있음을 느낄 것이다. 무레 요코는 에스컬레이터 탈 때 타이밍을 잘 못 맞추거나, 글자를 자꾸만 엉뚱하게 읽는다며 자조섞인 농담을 털어놨다. 그래서 책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았다. 나도 곧 겪게 될 일이니까. 참 소박하고 느린, 잔잔하고 조용한 슬로우 라이프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중년으로 최선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가 정감 있고 약간은 웃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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