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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일부가 자꾸 떠오른다. 어떤 괴생물체가 나타나 '넌 며칠 후에 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예고한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드라마 속 상황은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지옥, 악마, 천사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이미지가 원형의 공포를 이루어 만든 가상의 존재기에 더욱 기괴하기만 하다.
《라틴어 수업》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한동일 교수의 두 번째 책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인간의 믿음'이라는 주제로 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전작이 '언어'를 매개로 개인의 정체성, 역사, 문화를 설명해 주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포괄적인 통념에 집중해 고대, 중세와 현대를 이어준다. 그리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을 되묻는다. 당신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냐고 말이다. 정답도 끝도 없는 문제지만 잠시 멈추어서 곱씹어 보길 권유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앞서 말한 지옥, 중세에 끊이지 않았던 종말론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먹는 문제는 잦아들었지만 감염병, 전쟁, 데이터 등 또 다른 위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코로나19 이후 현대에서 초현대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밝힌다. 코로나 뉴노멀을 뜻하지 않게 맞이했지만 현실 속에서 자신을 살피고, 가능성을 발견해 뻗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고 미래를 내다보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모든 사람의 두려움이 되는 죽음과 지옥의 연결고리를 훌륭하게 건드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을 보면 뚜렷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실마리를 건드리는 내용이 많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확고한 믿음 대신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돌아볼 수 있는, 그 마음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P266
한동일 교수는 존재의 태도가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며,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을 전한다. 인간이 인간을 돕고 연대하는 순간 천국은 지옥보다 가까워져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천국에 간다고 행복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천국도 지옥도 가고 싶지 않다. 죽으면 그냥 연기처럼 휘발되길 바란다. 차라리 불교 경천처럼 환생이 낫겠다.
막연한 생각을 구체화하게 도와준 건 미드 [굿 플레이스]였다. 주인공 엘레노어가 자신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자기계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선과 악의 진정한 의미를 배워가고 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사후세계와 현실 세계, 철학적인 깊이와 시트콤 형식의 재미도 담겨 있는 수작이다. 넷플릭스에 있으니, 연말 꼭 챙겨 볼 것을 권한다.
내가 사는 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건 개인의 선함과 차별하지 않고 함께하는 공동체 의식이란 생각이다. 이 책을 보면서, 코로나로 인해 선진국이란 나라들의 어이없는 실수를 보면서, 얼마 전 드라마 [지옥]을 보면서 느꼈다. 결국 인간은 지옥도 천국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