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독서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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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선물 받은 책이다. 고급스러운 양장에 비비드한 컬러가 눈에 띄는 디자인이다. 두께감이 상당하지만 안쪽을 펴보니 명언집처럼 한두 줄의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고 술술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문구는 다이어리에 옮겨 적어 보았다. 끄적이다 보니 글은 늘어났고 혼잡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책은 198427살에 금서로 지정된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쓴 박노해 시인의 책이다.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1991년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사형을 받고서도 웃음을 감추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담겨 있는 듯 단단한 느낌이다. 그는 감옥소 독방에 갇혀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고 침묵의 시간을 보낼 때 독서와 집필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7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무기수에서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지만 국가보상금은 거부했다. 그 후에도 20년간 평화 활동을 멈추지 않고 지속했고, 만년필로 써 내려가는 글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고난의 길을 여러 번, 오래도록 겪었던 그는 인생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 중 하나를 '걷는 독서'에서 찾게 된다. 한 평짜리 어두운 감옥에서 두 걸음 반이면 벽이지만 걷는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비록 두 걸음의 독서지만 책 속을 걷는 걸음의 보폭은 광활했고 현장 곳곳을 누비며 탐험했다.

    

지금도 가난, 노동, 고난으로 점철된 청년 시기를 생각하며 걷는 독서를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인류 탄생 최대의 가장 많은 교육과 물건과 음식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누리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이, 더 크게 얻고자 하는 욕망 또한 꺼질 줄 모르고 팽창하고 있다.

미디어의 콘텐츠와 환경오염은 폭발하고 있고, , 물건, 음식은 풍부하다 못해 과잉되고 버려지고 있다. 너무 많아 무엇을 골라야 할지,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지조차 선택할 수 없는 장애를 갖는 우매한 인류기도 하다. 집단으로 바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 현 인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사유와 독서다.

 

따라서 다시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갖길 바란다. 남이 제시해 주는 정보, 요약, 심지어 생각까지 가지려 하지 말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삶을 박노해 시인이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박노해 시인은 진정한 독서란 지식을 축적하는 '자기 강화'의 독서가 아닌 진리의 불길에 나를 살라내는 '자기 소멸'의 독서라고 말했다. 책을 '읽었다'와 책을 '읽어버렸다'의 차이를 아는 독서를 해보라고 권장한다. 이를 통해 저마다 한 권의 삶이란 책을 완성해 보라는 말. 일과 삶의 고민이 커지는 요즘 한 줄기 빛처럼 마음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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