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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ㅣ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21세기에도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중인격, 자아분열, 해리성 장애 등으로 다양한 변주로 대중문화 속에서 거듭나고 있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관한 소설을 이제야 읽었다.
안개 낀 어두운 런던 거리. 새벽 3시쯤 되었을까. 한 아이가 가로등밖에 보이지 않는 거리를 지나고 있던 찰나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온 힘을 다해 뛰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퉁이에서 한 남자와 부딪히게 되자 그 남자는 태연하게 소녀의 몸을 밟고서는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떠나버렸다.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인가.
이 광경을 보던 엔필드는 그자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정상이 아닐 외모로 불쾌하고 혐오스러워 이렇게 싫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키도 작고 왜소한 체격에 어디라고 꼬집어 얘기할 수 없지만 기형의 분위기가 강하게 남는 사내였다고 회상했다. 그의 이름은 하이드였고 이상한 문을 지나다가 꺼낸 이야기였다.
이 대화를 나누던 변호사 어터슨과 친구 엔필드는 사회적으로 명망 높고 선행으로 잘 알려진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모종의 연관이 있음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가 소녀의 부모와 합의할 요량으로 건넨 수표에 자기 이름이 아닌 도시의 유명 인사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게 아니었던가. 이후 지킬 박사는 유산을 그에게 넘기라는 유언장을 남기기도 해 둘 사이가 혹여나 지킬이 협박 받는 상황이 아닐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킬 박사는 사람들과 너무 잘 지냈고, 그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지만 며칠 동안 두문불출한 지킬 대신 하이드가 거리를 활보하며 각종 트러블을 일으킨다. 두 사람은 수상함을 느꼈고 지킬이 살해당했다고 믿어 집에 급습하지만 그곳에서는 하이드 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잘 알다시피 지킬 박사는 화학적 실험으로 자신의 악한 자아를 분리했다. 어릴 적부터 무의식 저편에 도시라고 있던 악하고 어두운 면을 누르는 데 지쳤던 것이다. 충동적이고 악의적인 초자아를 절대 드러내서는 안되는 억압을 건너 후미진 뒷문을 통해 동전 뒤집듯이 드러낼 수 있는 날을 손꼽았다.
지킬은 도덕적이고 존경받는 사람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무책임한 사람을 언제나 마음껏 욕구를 분출하고 싶어 했다. 이 실험은 천신만고 끝에 성공해 변신 가능한 약을 개발. 추악한 내면의 자아 하이드를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지킬은 하이드에게 잠식당하게 된다. 하이드는 지인이자 명망 높은 댄버스 커루 경을 잔혹하게 살해했고, 결국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활개 치는 하이드의 만행을 두고 볼 수 없던 지킬은 자살을 결심한다.
소설은 초반 두 사람이 본 것을 토대로 지킬과 하이드를 탐정소설 형태로 서술하지만 중후반부에는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본 래니언의 편지, 마지막 장에 이르러 일기 혹은 회고록처럼 쓰인 지킬의 편지를 읽으면 마치 그 사람이 된 듯 이해하고 동정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