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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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작은책 시리즈는 내게 영감을 준다. 그나마 한국 소설을 접하게 해주는 창구다. 핸드백에도 들어가는 사이즈와 중량으로 언제 어디서든 책을 펼쳐들기 좋다. 분량도 중단편으로 짧아 부담 없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내려갈 수 있어 좋다.

 

소설 속 무대는 해인 마을이다. 20년 전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은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민영은 교내 백일장 대회에 자신이 아닌 진영이 나가는지 분통이 터진다. 저번 학교 대표로 나가 상도 받았고, 문학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애들 사이에서 유난히 빛나는 존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종의 오만함의 극치다. 좀 더 적극적인 이유라면,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야 산골 마을을 떠나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 그렇게 둘 사이는 백일장을 두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공정하게 글을 써 평가받아 승자를 가리기로 했다. 두 소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은 두 사람이 쓴 소설과 엄마 이야기, 작가 이야기, 그리고 소설이 교차되며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때문에 뭐가 현실이고 뭐가 소설인지, 환상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뒤섞인다. 그러나 방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편린 속에서도 읽고 나면 주제가 또렷이 떠오른다. 바로 시대를 넘나들며 상처받은 여성이 주인공이란 사실이다. 의사를 꿈꾸었지만 임신으로 포기한 여성, 기껏 쓴 소설이 세상의 벽에서 뭉개진 여성, 왕의 아이를 낳은 여성, 그리고 옹주, 가까운 사람에 살해당한 여성 등. 아프고 안타까운 여성을 위로하고 토닥인다.

 

솔직히, 비슷한 이름들이 계속 등장하고 엇갈려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다른 이야기와 맞물려 이상하리만큼 연결성을 갖는다. 꽤나 매력적인 구성이다. 한 번 읽어서는 도통 이해 가지 않으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뫼비우스 띠지처럼 뒤틀리며 교차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실화인지 허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누구의 삶을 사는지도 확실치 않다. 다만 세대를 거듭해 살아남은 여성들이 후대의 여성에게 남겨준 유전은 위대한 유산이 되어 영원히 각인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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