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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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흔적>(pokot)의 원작 소설을 만났다. 영화가 우리나라에 정식 수입 개봉되지 않아서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아쉬운 김에 노벨 수상 작가가 범죄 스릴러를 쓰면 어떤 글이 나오려나 궁금증이 더해갔다. 폴란드 작가 '올카 토카르추크'는 2018년 《태고의 시간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통속적인 추리 범죄 소설은 아니다. 장르 소설은 흔히 대중 소설 혹은 마니아 소설로 분류되는데 이 책은 그 노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함이 풍긴다. 노벨 수상자답게 독자에게 주제를 전달하는 방법을 여러 갈래로 나누고, 비틀고 꼬아놓아 쉽게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 올가가 꾸준히 제기해온 동물권 수로, 채식, 생태주의 등 환경을 향한 이야기가 주된 화두다.

 

신화와 전설, 외전, 비망록, 점성학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블랙 유머가 현대인의 무기력한 일상에 돌멩이를 던지고 나선다. 경계에 서 있는 인간이 동물들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미스터리한 일들의 연속, 과연 동물들의 복수의 전조인가 소설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삶과 죽음, 고독과 단절에 관한 철학적인 사유가 돋보인다. 개인과 동물, 지구, 우주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시공간의 신비로운 질서가 느껴진다. 때문에 어느 하나가 고장 나면 연쇄적인 파멸을 불러오리라는 경고라 봐도 좋다. 폴란드의 사회, 정치적인 은유를 들어 풍자하고 있다. 다사다난한 역사적 혼란기를 겪은 한국 독자들은 폴란드의 상황을 잘 모르더라도 공감할 요소가 다분하다. 거기에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토속적인 분위기가 겹치면서 인간의 잔혹함을 뒤돌아 보게 한다. 연쇄 살인은 그저 인간성을 잃은 사람들, 이중성을 드러내는 촉발요인일 뿐이다. 끊임없이 자아성찰을 촉구하는 질문들이 복잡하게 형성된다. 작가가 죽기 직전까지 끊임 없이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무척이나 성실하게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시적인 제목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연작시 《천국과 지옥의 결혼》 중 '지옥의 격언'에 등장하는 구절을 옮겼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해와, 중간 삽화로 사용된 체코의 만화가 야로미르 슈베이지크의 판화를 이해한다면 더욱 고차원적인 영감을 받을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영국 출신의 아나키스트로 평가받는 탈물질주의 시인이며, 야로미르 슈베이지크는 올가 토카르추크와 비슷한 생태주의 만화가로 알려져 있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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