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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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아끼자, 지구를 살리자'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지구의 주인은 지구인데 잠깐 살다가는 인간이 무슨 권리로 주인 맘대로 써놓고 살리네 마네 하는 걸까? 가끔 이런 표어를 보면 지구가 억울하리란 생각을 한다. 지구는 사실 아프다. 사람으로 따지면 낳을 수 없는 암이 서서히 잠식하고 있는 중이다. 암 3기쯤 될까. 항암치료를 한다면 살 수 있을지 그것도 낙담할 수 없다. 많은 아포칼립스 영화의 주제였던 '리셋'만이 답일지도 모른다. 타노스가 올바른 선택을 한 거다. 나도 인간이지만 인간은 참 오만하다. 남의 것을 제 것처럼 쓰고 제자리에 두지도 않는다.

 

책은 《랩 걸》의 작가 호프 자런이 지구와 풍요에 대해 자전적인 일화를 섞어 만든 이야기다. 생명, 식량, 에너지, 지구 등 지구별에서 인간이 생겨나 존재하며 벌인 역사에 관한 에세이다. 태어나 풍요롭고 편하게 생활한 만큼 지구가 달라졌음을 통계자료, 과학적 근거로 제시한다.

 

농업, 축산업으로 먹고사는 미네소타주에서 자라났다. 어려서부터 자연과 가까웠고 보고 듣고 자란 것도 많았다. 모든 기준은 자신이 태어난 해 69년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분명히 과학자 에세이인데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다. 흥미롭고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어쩌면 글을 이렇게 잘 쓸 수 있지 싶었다. 환경과 기후변화, 인류세를 설명하는 과학자가 퍽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만큼 쉽게 읽었고 알차게 습득되었다. 코로나 핑계 대며 일회용품을 죄책감 없이 쓰는 사람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첫 장부터 지구 역사의 일부인 가족사를 시작으로 인구가 어떻게 팽창했는지 다룬다. 챕터와 챕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나 더 나은 환경인 도시로 이주하며 더욱 풍요로움을 원한 게 되는 인간. 그리하며 음식이 필요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한 것을 두 번째 장 식량 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대량 식량을 위해 유전자 변형 농산물 GMO가 만들어지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작물의 1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그 씨앗을 쥔 다섯 곳이 미국 기업이라는 독점력의 무서움도 알려준다. 거기에 옥수수에서 액상과당이 만들어지고 미국인의 성인병을 방치하고 아픈 사람이 늘어나는 고리가 여느 공포 영화보다도 무섭다. 그리고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연어 양식의 실태도 보고한다. 양식은 이미 축산업과 같은 형태를 보인지 오래다. 작은 양식장에 물고기를 넣고 항생제, 먹이 등등 몸집만 키워 우리 식탁에 오른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한 끝없는 옥수수밭.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모래 폭풍에 식량이 옥수수뿐이라 물리도록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현 옥수수 중 녹말, 설탕(액상과당), 기름, 수지(gum),산, 왁스, MSG의 형태로 섭취하는 것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아니 거의 대부분이 거름 형태로 전환된다. 오늘날 우리가 섭취하는 고기는 어디에서 오는지, 공장식 축산부터 도축 등 불편한 진실들이 차고 넘친다.

 

지구 어디에서는 옥수수 죽도 먹지 못해 굶어 죽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고기 한 점을 위해 대량의 옥수수를 사료로 쓰고 차고 넘치는 분뇨를 생산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꾸만 반문하고 괴로워진다. 웬만한 비위를 갖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챕터도 더러 있다. 조금씩만 양보하고, 덜먹어도 될 텐데 욕심 때문에 연쇄적 고통이 시작된다. 그 마지막 도미노의 끝은 당신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를 쓰고, 더럽히다가는 인류 자체가 깡그리 없어져도 이상할 것 없겠다. 지구는 현재 겨우 버티고 있는 중이다. 언제 꺼지더라도 이상하게 아니라는 말이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환경은 엉망, 자원은 밑바닥을 보이고 있다. 뿔난 지구가 인구과잉일 때마다 안되겠다 싶어 쓰는 특단의 조치가 이번에는 코로나19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의심해본다. 이게 마지막 경고, 마지막 자정작용일지 모르겠다. 이제 지구는 살아갈 힘이 없다. 가난하고 버틸 재간도 없다. 지구와 작별 인사를 천천히 고해야 한다. 미래의 지구별은 결코 멋진 신세계가 아닐 것이다.

 

*본 도서는 제공 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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