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수학 - 수학이 판결을 뒤바꾼 세기의 재판 10
레일라 슈넵스.코랄리 콜메즈 지음, 김일선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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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숫자가 주는 답에서 진실과 가까워 질까? 애석하게도 수학적 오류는 가장 공정하고 타당해야 할 재판장에서 자주 일어난다. 이 책은 수학이 판결에 영향을 준 세기의 재판 10선을 모았다.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법정에서 사용된 다양한 수학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수학은 정확하고 공정한 것 같지만 사실을 오도하고 눈 감게 내버려 둔다. 아주 작은 오차로 인해 유죄와 무죄가 갈리며 사람의 목숨과 삶이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우리는 숫자가 주는 정확성을 너무나 당연시했다.

 

 

따라서 책은 계산 착오, 계산 결과의 오해, 필요한 계산 간과 등 인간이 저지를 실수로 부당한 판결을 받은 이들을 위로하기 충분하다. 10건의 사건으로 억울한 결정적 순간들을 되짚어 보고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상황을 제시한다.

 

 

20세기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기억하는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인권을 탄압해도 괜찮은가에 대한 성찰과도 같은 선례다. 당시 드레퓌스는 알자스 지방 출신 유대계 프랑스인 장교였다. 하지만 독일 대사관에서 발견한 메모 한 장 때문에 독일 스파이로 지목되었다. 법원은 필적 전문가를 초빙해 확률적으로 접근했고 결국 유죄가 선고되어 악마의 섬에서 종신형을 받는다.

 

 

이 사건의 핵심은 과연 필적 전문가가 사용한 필적이 일치할 확률 싸움이다. 수학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광기는 한 개인의 삶을 통재로 날려 버리기도 한다.

 

 

너무나 유명해 자주 언급되는 확률의 오류 샐리 클라크 사건은 수학, 확률, 재판 실수를 말할 때 항상 나오는 예시다. 재판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수치가 나온 맥락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맥락과 상관없이 단순 인용해 용의자의 범죄 유무를 입증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두 영아 돌연사의 용의자가 된 친엄마 샐리 클라크 사건은 비극적 사건의 연쇄 도미노라 할 수 있다. 1996년 샐리 클라크는 첫아이 크리스토퍼를 낳았고 지극정성으로 돌보지만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듬해 둘째 해리를 낳았지만 역시 한 살을 넘기지 못하고 돌연사 했는데 한 가정에서 잇따른 영아 사망 사건을 의심해 그녀는 유괴 판결을 받는다. 재심으로 풀려났지만 이미 3년간 복역하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샐리는 알코올중독으로 석방 4년 뒤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소아과 의사였던 메도의 '7300만 분의 1'의 수치는 지금까지도 선례로 남아 주의해야 할 통계 오류로 남아있다. 그녀는 모성을 고발해 10여 명의 엄마들을 감옥에 보냈고 재심 후 석방된 다소 황당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메도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고 무너져 버린 가정과 엄마들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는 수학적 계산과 숫자가 우리 눈을 멀게 할 수 있다. 이를 분별해 내는 것은 끊임없는 의심이다. 숫자는 모든 과학이 아니며 진실도 아니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수많은 근삿값일 뿐. 과학도 오류, 거짓, 조작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함을 보여주는 답답하고도 슬프고 목이 메는 사건들이 수록되어 있다.

 

 

10가지 사건을 접한다면 책을 읽기 전으로 도저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수치, 확률, 숫자는 얼마나 정확한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말아먹을 정도로 대단한가에 대한 질문과 답이 되길 바란다. 수포자인 나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풀이된 수학 인용 사례집이다. 코로나 시대, 폭스 팩터나 좌중을 압도하는 숫자에 현혹되지 않고 비판적인 사고와 나만의 관점을 세우는 게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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