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세상을 떠나도 오늘 꽃에 물을 주세요 - 3천 명의 삶의 마지막을 위로한 감동의 언어 처방전
히노 오키오 지음, 김윤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라고 한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오늘도 내가 한 말에 신중함을 더하려고 노력한다. 과연 말 한마디에 드는 시간과 돈은 물리적으로 얼마일까. 어제도 늦더위와 코로나에 어쩔 수 없이 찾아간 핸드폰 서비스 매장에서 불쾌한 일을 겪었다. 핸드폰 수리기사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했던 나를 돌아보면 실로 언어가 가진 힘을 떠올렸다. 3분만 아니 30초반 내 말을 들어주었어도 좋았을 것을. 고객 서비스란 웃음과 상냥한 말투가 아니다.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진정성, 그리고 단 한마디일 수도 있다.

 

《내일 세상을 떠나도 오늘 꽃에 물을 주세요》는 전 세계 최초 '암철학 외래'를 개설한 '히노 오키오' 선생의 책이다. 그는 부검으로 병의 원인을 찾는 병리학자이자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가 암에 걸린 사람들에게 건넨 말은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좋은(위대한) 참견'으로 적용되었다. 수술, 약, 병상에서 치료하지 못하는 것들을 채워가고 있는 그 이상의 치료다.

 

좋은 참견이란 그가 만들어낸 약간 즐겁고 익살스러운 말이다. 참견이라는 부정적인 말에 위대한, 좋은 이란 형용사를 붙여 확장된 감정으로 만들었다. 이런 과정이 바로 언어 처방의 일환이다. 유머를 잃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언어유희, 아재 개그를 남발하는 의사. 인생에는 그의 말마따나 유머와 유(you), 모어(more)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말과 충고도 자신의 기분 대로 밀어 뭍인다면 상대방에게는 잔소리와 악담일 뿐이다. 정말 필요한 관심이 무엇인지 상대방의 처지에 맞게 생각해 보는 게 첫 번째다. 다소 낯선 암철학 외래를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암이 주는 고통보다 심리적으로 더욱 고통스러운 분들이다. 암이 전이되었거나 재발하거나, 시한부를 선고 받고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어 작고 보잘것없는 이야기도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해소되는 여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을 의사와 환자의 입장을 넘어 함께 생각한 것이 암철학 외래다. 외래진료라고 해서 거창하지 않다. 무료로 진행되고 1 대 1로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그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위인의 말씀이나 철학적 사상을 4-5가지 덧붙여 전해주는 것이다. 언어로 위로받는 언어 처방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이를 통해 죽음에 가까워지기 보다 삶의 의지에 가까워짐을 환자와 의사 모두 경험한다.

 

그는 스승인 유시다 토미조 선생의 사상을 이어 받아 암도 공생이 아니라 공존이라 일컫는다. 인간 사회에 적용해보면 평화의 비법은 긴장 위에 균형을 유지하는 공준 관계를 쌓는 것이라 말한다. '암철학'이란 그야말로 '암세포에서 생기는 것은 인간 사회에도 반드시 일어난다'라는 사고방식인 것이다. 일어난 일은 일어나고, 애쓰지 않아도 일어나게 되어 있다. 몇 년 전에 드라마 대사로 들었던 어처구니없는 말의 대명사 '암도 생명이다'라는 말의 뜻을 이제서야 조금은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선생이 전하는 언어 치료의 핵심은 누구도 죽음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한부를 선고받아도 10년을 더 산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우리나라에는 정식적은 암철학 외래 진료라는 심리적 상담 체계가 없는 것 같다. 하루빨리 도입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전문 병원이 어렵다면 사설 기관에서라도 암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도 질병의 공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