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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 - 인간관계부터 식품.의료.건축.자동차 산업까지, 향기는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로베르트 뮐러 그뤼노브 지음, 송소민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8월
평점 :
특정 냄새만 맡아도 어떤 추억이 소환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는 어릴 적 부모를 여읜 폴이 이웃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해 그녀가 내어 준 차와 마들렌을 먹고 상처와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냄새에 민감하기에 좋은 냄새, 불쾌한 냄새, 싫은 냄새 때문에 곤욕을 치러본 적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냄새에 덜 민감해지길 바랄 때가 있었다. 어떨 때는 싫어하는 냄새가 편두통을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날로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냄새를 잃는다는 것은 도태되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19 양성 반응 증상 중 '후각 상실'도 포함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후각 안테나를 풀가동하고 지내는 참이다.
향은 실로 많은 분야에서 마케팅 용도로 쓰인다. 향기는 그 사람, 그 물건, 그 음식의 첫인상이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부터 식품, 의료, 건축, 자동차 산업, 두려움 치료 등. "냄새로 이런 것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삶의 영역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향기 마케터인 '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가 말하는 냄새에 관한 A부터 Z까지다. 냄새에 관한 궁금증, 역사,사례들로 채워져 있다. 향기 활용 노하우뿐만 아니라 스스로 향기를 만들고 팔며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조향사의 삶과 향기에 관한 이야기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향수>를 기억하는가? 지독한 냄새가 가득한 파리의 생선 시장 한복판에서 태어난 주인공 그르누이는 향기를 쫓다 결국 살인마가 된다. 시청각 콘텐츠인 영화에서 도저히 맡을 수 없는 향기들을 영화 시사회장에 재현한 일화가 적혀있다. 강렬한 오프닝인 그루누이가 태어나는 파리 생선 시장의 냄새 '파리 1738'를 향수로 만들기도 했다. 과연 그 냄새는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향수를 얻기 위한 인간의 잔인한 행동은 끝도 없다. 사향고양이의 항문선에서 나오는 냄새를 얻기 위한 도축 행위나, 향유고래의 위에서 생성되어 소화되지 않고 남은 잔류물이 토하거나 항문으로 배출될 때 나오는 용연향은 희귀해서 값비싼 물질이라고 한다. 자연에 있을 때는 한없이 불쾌한 악취지만 적당한 비율로 섞거나 공기 중에 머물면 두 향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적인 향기가 된다. 악취를 없애기 위해 다른 향으로 뒤덮는다는 말도 향기에서는 가능하다.
기분 전환으로 맡는 향기가 향유고래의 내장에서 꺼낸 것이라는 아이러니. 냄새와 향기는 생각보다 한 끗 차이다. 그 외에도 수사슴의 생식기에 딸린 사향선을 떼어 말린 머스크 향, 비버의 포피성에 나오는 영역 표시 물질인 해리향(최음 작용) 등. 동물계에서 얻어지는 향의 잔혹성과 기묘한 인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동물계의 최고의 코는 누구일까. 바로 '나방'이다. 나방은 더듬이로 냄새를 인지하는데 1초 동안 페로몬 분자 5개가 더듬이에 닿는 것만으로도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어쩐지, 여름철 내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나방의 정체가 밝혀지는 묘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