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떡볶이로부터 - 떡볶이 소설집
김동식 외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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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소설집' 어째 맵고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여자들이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까? 나를 예로 들자면 떡의 쫄깃하고 뭉텅한 식감보다 양념 잘 벤 어묵 쪽이 더 좋아하는 타입이다. 따라서 튀김을 추가할 시 찍먹보다 부먹을 좋아하는 편. 튀김옷이 떡볶이 국물에 불어서 양념 맛이 고루 베어 있으면 금상첨화다.

책은 떡볶이를 향한 무한 애정부터 상처,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해 김말이 같은 들러리를 메인에 두기도 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 낸다. 떡볶이 초끈 이론부터 떡볶이와 어묵 등 재료의 의인화, 그들의 마음까지 섭렵하기도 했다. 이 세상 텐션이 아닌 듯한 감성도 한몫한다. 재기 발랄한 여섯 이야기꾼이 모여 떡볶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여담집이 완성되었다.

짧은 단편이 끝나면 작가의 말을 통해 의도한 바를 들을 수 있다. 영화로치면 GV 같은 느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전적인 경험에서 쓴 김민섭 작가의 '당신과 김말이를 중심으로'였다. 교수가 되고 싶은 일념 하나로 조교, 시간강사 등을 묵묵히 버텨 온 대학원생들의 처절한 삶의 모습이 떡볶이와 어울려있다. 대학을 부유하는 유령 같은 그들의 모습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떡볶이의 믹스 매치는 가슴 한구석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끓어오르는 철판에서 용암처럼 녹아내릴 듯한 떡볶이의 모험도 색달랐다. 자신이 떡볶이가 될 운명도 모른 채 하얗게 피어올랐을 밀떡과 쌀떡 시절부터. 영문도 모른 채 포장 당하는 순간. 인간의 입속에서야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떡볶이 수난 시대를 킬킬거리면서 읽기도 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웠던 시대 떡볶이를 떠올려 볼 만큼 누구에게는 귀한 음식임에 틀림없는 좀비 아포칼립스도 재미있었다. 좀비가 출몰해 폐허가 된 시대 떡볶이의 맛과 추억을 공유하는 것만큼 낭만적인 게 또 있을까. "옛날 옛적에 말이야"라며 라떼는말이야로 아이들을 선동하는 노인이 미래의 내 모습 같기도 했다. 떡볶이가 진짜로 있었던 시절을 상상하며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절박하고도 안쓰럽다. 우여곡절 끝에 망가진 세상에서 인스턴트 치즈 떡볶이를 발견하고 만들어 먹자는 욕심이 생긴다. 이때부터 시작된 떡볶이를 향한 모험이 펼쳐진다.

너무나 충격적인 것은 대재앙이 바로 남들보다 더 잘 살고, 더 맛있는 걸 먹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거다. 그래서 욕심을 철저히 버리는 것만큼 철저해진 게 없는 세상.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일부러 멀리까지 순례(?)를 떠나는 맛집 원정대는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아이들과 여성들의 간식 혹은 한 끼(남성들은 대체로 떡볶이를 안 좋아하더라)로 사랑받아 왔다. 언제 먹어도 또 먹고 싶고 질리지 않는 맛으로 사랑받은 서민음식이 프랜차이즈 바람과 함께 비싼 음식(무엇을 넣으냐에 따라)이기도 한 지금의 풍경도 아이러니하다. 떡볶이를 소재로 참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구나 재미있게 읽었다. 음식에 스며있는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러나저러나 길어지는 꿉꿉한 장맛비에 맵고 짜고 뜨거운 떡볶이를 먹는 것만큼 이열치열의 즐거움이 또 있을까. 오늘은 무조건 떡볶이를 먹을 테다! 나의 소울푸드 국물 떡볶이에 순대 한 접시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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