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샷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사피 바칼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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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샷(loonshot)이란 대부분의 과학자나 사업가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혹은 성공하더라도 시장성이 없다고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를 말한다. 그러나 이런 룬샷은 전쟁, 의학, 영화, 비즈니스의 판도를 바꾼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룬샷은 조롱당하고 무시되며 방치된다. 그래서 룬샷을 대부분 영영 기회를 잡지 못한다.

 

저자 사피 바칼은 물리학자 부모 밑에서 과학자의 길을 가던 중 다른 측면을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에 몸담게 되었고 룬샷을 발견하게 된다. 과학과 경영학,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내용이다.

 

책은 다섯 명의 뛰어난 사람의 이야기를 1부에서, 2부에서는 여러 법칙의 바탕에 놓인 과학적 원리를 설명해 준다. 마지막 3부에서는 룬샷의 다양한 예를 재미있게 다룰 것이다.

 

책에 소개된 밀러의 신약이 전형적인 예다. 종양학자였던 그는 화학자들이 부르는 피라냐였다. 피라냐는 일종의 복불복 폭탄이 될 수 있는 신약인데 만약 엉뚱한 단백질에 들러붙는다면 독성으로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고 다녔을 때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결국 임상실험을 했지만 CEO 자리까지 내놓으며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결과는 FDA 승인. 약이 출시되고 그를 조롱하던 한 대형 제약회사에 인수되었다. 인수 가격은 210억 달러였다.

 

때문에 룬샷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아닌 구조(시스템)의 작은 변화가 필요하다. 이 개념의 핵심 상전이(복잡계의 갑작스러운 변화 相轉移, phase transition)를 소개한다. 상전이라는 과학적 원리나 팀, 기업, 혹은 어떤 형태든 목적을 가진 집단의 행동에 적용해 보면 룬샷을 더 빨리 키워낼 수 있다.

 

하지만 룬샷을 놓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애플보다 먼저 스마트폰을 발명한 노키아, 최초로 콜레스테롤 저하제, 사상충증 약을 개발한 머크가 우습게 보았던 유전공학 기술, 항암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정신과 치료제. 그리고 디즈니가 놓쳤던 것들. 한때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기업들이 침체를 겪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잘나가던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바로 대기업이 자주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인 조직문화의 대표적인 보수, 리스크 회피를 꼽았다. 비즈니스에서는 미스터리일 수 있는 행동 변화가 물리학에는 상전이(모든 것이 변하는 순간)라는 행동 패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조직의 상태를 이해하고 나면 팀의 성격이 갑자기 왜 바뀌는지부터 제어할 수 있는 방법까지 생각해 낼 수 있다.

 

저자는 물리학자 출신답게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고체, 액체, 기체로 모습이 달라지는 물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결국 상전이는 물 분자의 고체 형태를 잡아두려는 결합 에너지와, 무질서를 지향하는 시스템 엔트로피는 물 분자가 돌아다니도록 부추긴다. 이 상충되는 요소가 역전될 때 시스템은 전환되고 물은 얼어버리는 것이다. 이 경쟁 인센티브를 조직문화에 대입해 보면 '판돈'과 '지위'로 치환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 프로젝트 결과에 따라 누구에게나 큰돈이 걸려 있다. 망하게 되면 다 같이 망하고 성공하면 다 같이 성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위에 따른 특전(승진에 따른 연봉 인상)은 미미하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큰 조직에서는 판돈이 줄어드는 반면 지위에 따른 특전이 커진다. 이 두 가지 조건의 크기가 역전되면 시스템이 전환된다. 그러나 조직이 안정화되어 있을 때 똑같은 구성원이더라도 룬샷은 그냥 헛소리가 된다.

 

그런 까닭에 혁신적인 조직, 획기적인 아이템, 모두를 놀라게 할 제품을 원한다면 문화가 아니라 구조의 작은 변화를 주어 경직된 팀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기업, 산업 내부에서 룬샷 배양소가 잘 번창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1. 상분리 : 룬샷 그룹과 프랜차이즈 그룹을 분리한다.

2. 동적평형: 양 그룹 간에 막힘없는 교환이 오간다.

3. 임계질량: 룬샷 그룹이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크다

가장 적합한 사례가 영화 산업과 신약 개발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두 개 시장으로 나뉘어 있고 시장은 그물망 같은 파트너십으로 연결되어 있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대형 기업 시장과 룬샷을 육성하는 소규모 전문 기업들의 시장이다. 수백 개의 작은 영화사와 작은 바이오 테크 기업이 새로운 영화 혹은 신약 개발의 룬샷 배양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룬샷의 시스템인 상분리와 동적평형을 이뤄 임계질량을 달성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례 중 왜 세계 공용어가 중국어가 되지 못하고 영어가 되었는지를 세 시스템에 빚대에 설명한다. 기원후 500여 년부터 1500년 정도까지 중국과 인도는 세계경제를 지배했다. 종이와 인쇄술, 나침반, 화약, 대포, 크랭크축, 심정 굴착, 주철, 지폐, 천문대 등은 유럽보다 수백 년 앞서 중국에서 먼저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 세계 경제는 어떤가. 이미 세계정세는 뒤집혀 버린 뒤다.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이슬람, 인도의 제국들은 대형 민족국가였고, 당시 서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세계의 룬샷 배양소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유구하고 선진적인 기술과 문화를 뒤로하고 막대한 자원을 들여 프랜차이즈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베이징, 만리장성, 대운하 등등. 새롭고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미친 아이디어는 사장된다.

 

반대로 임계질량을 달성한 서유럽은 조화로운 기술과학 발전이 이루어졌고, 중국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현대 과학 사례들이 줄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서유럽의 작은 민족국가들 특이 섬나라 영국은 룬샷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룬샷은 프랜차이즈에 치중하는 제국이 아니라, 룬샷 배양소에서 번성한다.

 

《룬샷》을 읽어 보면서 계속해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창의성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 아이디어를 실행시켜줄 수 있는 기업의 자질을 실험하는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책에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통찰, 서프라이즈에서나 봤을 법한 드라마틱 한 역사적 실화가 가득하다. 혹시나 두께나 무게감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면 거두절미하고 책을 선택해 보기 바란다. 세상의 모든 기술에만 룬샷이 적용되는 게 아니다. 바로 이 책을 선택하지 않는 당신의 마음도 룬샷이 되어 새로운 파괴의 혁신이 될지 누가 알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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