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일기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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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 더 살 수 있다면 한번 멋지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흔하다. 기대수명 100세. 지금 세대는 정말 100세까지 무병장수하는 세대일까? 우리 시대 진정한 철학자로 불리는 김형석 교수는 한국 역사의 살아있는 화석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민주화운동 IMF와 2002 한일 월드컵, 그리고 코로나19까지. 질곡의 한국 역사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인생 자체가 역사다. 윤동주와 같은 반에서 수학했고, 안창호 선생의 마지막 연설을 듣기도 했으며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할 때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본 장본인이다.

 

나이 40이 되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된다. 몸은 늙어가지만 수양을 통해 정신은 오히려 성장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당신에게 10년이 더 생긴다면 멋진 옷도 입고 다른 인생을 꿈꾸고 싶다고 말한다. 한번 멋지게 살아보는 것. 살아온 나이에 책임지는 인생, 그 자체로도 이미 멋지다.

 

1920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평안남도 대동군 송산리에서 자랐다. 고향에서 해방을 맞이했고 1947년 탈북했다. 7년간 서울중앙고등학교 교사와 교감을 지낸 후 54년부터 31년간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봉직했다. 1985년 퇴직한 뒤 만 100세를 맞이하는 지금까지 강연과 저술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나이가 들면 생각도 몸도 굳어버리게 마련이다. 새로운 정보나 관념을 들이고 내 것을 내놓기란 쉽지 않다. 김형석 교수는 100세라는 나이에도 생각의 순환이 활발한 사람이다. 세금을 많이 내니 흐뭇하다는 말로 국가에 보답하겠다 말한다. 그는 이렇게 화답한다. "나는 탈북 1세대입니다. 그때 대한민국이 나를 품 안에 안아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세계 어디에선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요"라고 말이다. 그에 곁들여 세금으로 무료 의료 서비스를 받는 캐나다 지인의 일화를 곁들여 국가에서 받은 혜택을 공익 환원으로 갚고자 한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나이가 많아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유쾌하게 풀어 내기도 했다. 100세가 되니 사람들이 나이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생기는 해프닝인데,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탓에 생기는 일화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가던 중 다음 정거장에서 두 손에 지팡이를 짚고 올라타는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단다.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는 앉으며 "고마워"라고 했고, 내릴 때 부축해 함께 내렸단다. 허리가 앞으로 많이 굽은 할아버지에게 혼자 다니는 게 괜찮냐는 물음에 손녀가 마중 나올 거라며 네 발로 걸어갔다고 한다. 김 교수가 나이를 묻자 네 발 할아버지는 올해 아흔둘이라고 했고, 일곱이나 손 아래 할아버지에게 반말을 들은 마음은 억울함과 고마움이 교차되었다.

 

60살부터 시작한 수영장에 나이가 많아서 등록하기 힘들었던 일, 할머니 회원들에 쫓겨서라도 수영을 하려는 의지. 사랑하던 아내와의 행복했던 시간들. 꿈에서라도 만나는 그리운 가족과 친구, 후배들에 관한 담백한 이야기가 웃음을 준다. 아직도 젊은이들을 보면 마음이 뛰고, 백발이 송상한 주름진 제자가 찾아와도 기쁘고 고맙다. 뼛속까지 교육자로 산 소회와 책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이만 많아 세상에 짐이 되기보다는 아직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세상의 더 많은 일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노년. 청년의 활기와 열정은 신체 나이와 비례하는 게 아니다. 김형석 교수는 60에서 70대까지는 정신적으로 성장, 성숙할 수 있고 그 기간에 맺은 열매가 90까지 연장되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100세가 되어서도 아직 인간적 성장은 남았고 타인에게 작은 모범과 도움을 주고 싶은 의지도 피력한다.

 

한 세기를 산 기분을 느껴볼 수 있을까. 비록 타인의 글을 통해 간접 경험한 것이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과 약을 달고 살아도 이길 수 없는 게 있음을 깨달았다. 매일 여러 가지 음식물을 다양하게 섭취하는 식습관, 작년과 재작년 일기까지 들춰보며 지난날을 반성하고 오늘을 기록하는 꾸준함, 그리고 삶에 감사하며 항상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고자 한 미덕. 100년과 더불어 산 행복을 노교수의 백세일기는 고마움, 사랑, 그리움, 어제보다 더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는 간절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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