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상처만 남진 않았다
김성원 지음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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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작가답게 말랑말랑한 말들이 천지다. 글이 주는 말맛과 색깔이 배어 있는 감수성이다. 예술을 사랑했던 부모님 탓에 어릴 적부터 음악, 영화, 미술 등을 보고 자랐다. 때문에 스스로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이 유전자에 심어져 있다는 말도 꺼낸다.

 

<스타워즈>를 좋아하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고, 마틴 스콜세지 영화를 보며 과후배인 봉준호와 이야기하던 일화도 재미있다. 그때 독립영화 창작연구소란 영화 소모임과 네이키드 데이비스라는 가상의 록밴드도 만들었다. 그렇다. 청춘의 우리는 돌이켜보면 참 별별 일들을 용기롭게 했었다.

 

무모했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떠올리던 과거를 떠올린다. 미래에 무엇이 될까 떠올릴 수 없어 불안했던 시절. 지금 돌아보니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즐거웠다고 반추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20대를 생각했다. 지금은 없어진 스폰지 하우스 종로, 씨네코아 등등. 작은 영화관에서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 <기담>을 보러 갔던 기억 등이 찬란했던 20대를 소환하게 만들었다. 좋은 글은 그 글을 통해 내 삶을 반추할 수 있다는 거다. 이 에세이에 가득한 영화 이야기는 비록 나이는 같지 않지만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자꾸만 책장을 넘기며 영화 이야기를 찾아봤다. 책 속에는 영화 이야기가 참 많아 좋다.

 

김성원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갖은 공포와 슬픔을 경험한 작가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를 보며 펑펑 울고야 만다. 같이 본 지인이 쳐다볼 정도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고 가족이 죽는 부분은 다시 보기 했을 때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느낌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그 시간을 오고 피할 수 없다. 아직 <셔터 아일랜드>를 보지 않아 100%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충은 짐작이 갔다. 그때는 영화를 보며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살아남았고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힌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타노스에 관한 심리학적 분석도 흥미롭다. 이 책은 말랑한 에세이 같지만 굵직한 인문학서 같기도 하다. 저자는 심리학을 대학원에서 공부해서 그런지 모든 이야기가 심오한 깊이감이 느껴진다.

 

타노스는 파괴를 향한 본능, 죽음의 본능을 의미하는 프로이트 용어 '타나토스(Thanatos)에서 유해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다른 빌런들과는 차원이 달라 보이긴 했다. 자신의 행성 타이탄이 인구과잉으로 파멸한 경험을 들어 인구의 반을 없애야 하나는 이성적인 사고를 실행한다. 타노스는 원대한 목표를 이룬 뒤 고요한 노을을 바라봤다. 노을. 사라지는 낮의 은유일까, 없애버린 인류의 반을 위한 위로일까.

 

제목처럼, 넘어져도 상처만 남지 않았음을 적잖이 위로해 준다. 훗날 상처를 보며 다양한 생각을 할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지, 추억으로 후후 웃으면서 넘어갈지,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는 당신의 몫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자명하다. 오늘 겪은 일은 내일, 또 다음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라는 것을. 실패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음 일의 연료로 쓰일 날이 올 거라는 거다. 그래서 오늘 좌절하더라도 내일 웃을 수 있다. 내가 매일 지겹고 하기 싫더라도 매일 조금씩 읽고 쓰는 이유다. 매일 하는 사람은 갑자기 시작해 이루려는 사람보다 도달할 바탕이 조금이라도 앞서 있음을 잊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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