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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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박테리아에 감염될지, 누가 병에 굴복할지 예측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박테리아는 대상을 가리지 않으므로 우리는 모두 위험에 처해 있었다.

p94

 

 

코로나19의 기세가 생각보다 세다. 좀처럼 번진 불길이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기한 전쟁,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사투는 인류와 인연이 깊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세균 등은 자연의 질서를 무분별하게 파괴한 인류에게 주는 경고성 대가다.

 

지금도 대구와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코로나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직 백신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는 밤잠을 설쳐가며 백신 개발에 힘써주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병원균을 정복하고 있다. 하지만 정복했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슈퍼버그는 계속해서 변종을 만들어 내고 인류와 전투 중이다.

이 책은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의 의사 맷 매카시가 앨러간의 의뢰를 받아 달바바신(항생제) 시판 전 임상시험에 관한 이야기다. 항생제 신약의 임상 연구의 어려움이 절절히 적혀 있다. 책은 실제 환자 사례와 항생제 개발 사례 두 가지 축으로 흘러간다. 항생제 연구와 개발은 필요하지만 진균 연구는 의학 쪽에서도 변방이며 미생물학자, 진균학자는 해마다 줄어든다는 사실도 전한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돈 잘 버는 분야로 쏠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의 멘토인 의사 톰 월시를 관찰하고 쓴 병상 기록 에세이기도 하다. 매카시는 최근 미국의 한 방송에 출연해 코로나19를 향한 미국 정부의 답답함을 질책한 적이 있었다.

 

책에 나온 사례는 실화다. 매카시가 달바 임상실험에 참가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병원 환자들운 만나는데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이로써 얻게 되는 현장감이 마치 그 병원에 함께 있는 듯하고, 사연들은 영화소재로도 충분하다. 30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의사의 부주의로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을 처방받아 중독자가 된 사연, 9.11테러 중 발암물질을 흡입한 소방관, 홀로코스트에서도 살아남은 여성의 일화는 슈퍼버그의 위험성과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의 수고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가 있다.

 

 

적절히 인류 의학 발전에 기여한 역사 속 인물들을 더해 재미와 사실성을 높이기도 했다. 페니실린을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 설파닐아마이드(항생제)를 발견한 게르하르트 도마크, 항진균제 니스타닌을 발명한 헤이즌과 브라운, 리신 연구에 투자한 록펠러, 나치의 생체 실험과 터스키기 매독 생체 실험 이야기 등으로 임상연구 원칙이 만들어진 명암을 들여준다.

 

또한 항생제 개발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 의료 감독의 기원도 설명한다. 현대적 연구윤리위원회(IRB)가 쉽게 이용당할 수 있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견고한 메커니즘, FDA가 혁신 치료제로 지정받은 약에 대한 신중한 안전성과 승인 절차 정보도 얻을 수 있다. FDA는 환자와 제약사, 의사, 신약 개발자 간의 의견 충동을 효과적으로 조율할 수 있어야 하며, 꾸준한 스폰서가 되어주는 기업가 정신의 필요성도 설파한다.

 

슈퍼버그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지만 항생제는 197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한마디로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는 바로 돈!새로운 항암제는 높은 가격을 치를 의향이 있지만 비싼 항생제는 거부감을 갖는다는 논리로 대응한다. 10년 이상 걸려 항생제를 개발해도 금방 슈퍼버그 내성에 따라잡혀 투자비 회수에 난항을 겪는다는 것. 따라서 항생제를 공공재로 인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상 강력한요구다. 항암제는 내성이 생겨도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만 항생제는 내성이 생기면 사회로 전파된다는 이유를 들면서 설명한다.

 

병원은 이상한 직장이다. 가끔 경이롭기도 하지만 황폐할 수도 있는 곳이다. 환자의 완치, 인간관계, 의학 발견 등 의사라서 멋질 때가 있는가 하면 그에 상응하는 힘든 순간들이 항상 뒤따라왔다.

p197

최근 본 캐나다 드라마 [빨간 머리 앤]에서는 장래희망이 의사인 길버트가 죽음을 전해야 하는 잔인한 직업관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환자에게 어떠한 위안도 주지 못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의사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 처방에 앞서 진정으로 환자를 걱정하고 공감하느냐다. 직업적인 소명의식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사명감, 희생정신, 연민, 윤리 등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구에서 고생하는 의료진과 마찬가지로 의사가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임에 틀림없다. 이는 월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흔히 미국에는 병원비로 판산하기도 함) 병원비를 탕감해 준 의사들의 관대함에서 영향받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명제가 더욱 확실하게 다가왔다. 환자를 돈으로만 보는 병원들이 아직 너무나 많고, 생명 앞에 그냥 직업인인 의사도 많다. (돈이 중요한 이들의 논리도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항생제 내성이 생긴 슈퍼버그는 오늘날 더 적응력이 강해지고 악성으로 진화하고 있다. 슈퍼버그는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다. 항생제는 환자가 아플 때만 단기로 처방되며 반드시 어떤 항생제든 내성이 발생한다. 하지만 인류를 위해 만들어진 항생제를 동물에게 무분별하게 쓴 결과 슈퍼버그 출현을 앞당겼다. 달바는 1980년대의 항생제 사냥 중 인도의 흙에서 발견한 박테리아의 추출 분자 A40926으로 만든 약이다. 애석하게도 달바 또한 내성을 피할 수 없다.

 

끝으로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 궁금했던 것들을 어느 정도 충족 받을 수 있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2년 메르스, 1976년 처음 생겨 2014년 강타한 에볼라 바이러스 등 끊임없는 바이러스의 변이는 인류와 공생하는 존재다. 영화 <컨테이젼>처럼 몇 달 만에 백신이 발명돼 인류가 안정을 찾아도 문제다. 또 다른 슈퍼버그가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그저 인류는 무기력하게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만은 없다. 모래로 쌓은 성은 쉽게 무너지겠지만 쉽게 쌓을 수 있다는 장단점이 있다. 팬데믹까지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제발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희망을 잃어버리는 순간 인류는 도미노처럼 스러져 자멸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판도라 상자에 담긴 희망이 있다. 때문에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 우린 그 힘을 오늘도 내일도 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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