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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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믹서에 담겨 출렁이는 수프와 같아서, 그 한가운데에서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칼날에 찢기지 않으려고 애써야만 하는 것이다.

p91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성장은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힘겹다. 하지만 누구나 성장한다. 상처받은 유년 시절이라고 해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겨내야만 한다. 그 과정을 과연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벨기에의 공쿠르상이라 불리는 빅토르로셀상을 비롯해 전 세게 14개 문학상을 석권한 《여름의 겨울》은 잔혹한 성장소설이다. 《모모》, 《자기 앞의 생》을 잇는 경이로운 성장소설이란 찬사를 받은 이 소설은 아버지의 폭력에 속수무책인 가족들의 심경을 다루고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텍스트로 경험하는 폭력이다.

사냥을 즐기는 아버지는 엄마는 물론 소녀와 그 남동생까지 가족이 아닌 사냥감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사랑이란 이름은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끔찍하리만큼 보여주고 있다. 무기력한 엄마는 아이들을 돕지 못한다. 자기 목숨값도 챙기지도 못하는 상태니까 말이다.

십 대 소녀는 이름이 없다. 발에 밟히는 잡초에게도 이름이 있건만 소설 속 주인공 아이는 이름이 없다. 그저 아버지의 부속품일 뿐 개인의 삶, 한 인격체로 존중받을 수 없어 안타깝다.

 

여자아이가 무슨 교육이냐고 말하는 아버지 탓에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철저히 남동생 '질'을 빼고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철저히 숨긴다. 익명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원제 (La vraie vie) 진짜 삶의 의미처럼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짜였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소설을 통해 진짜 삶을 살고 싶었던 아무개 소녀의 가짜 삶을 먹먹한 문체로 만나볼 수 있다.

항상 음지에서 도사리고 있는 가정 폭력의 위험에서 제대로 된 치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 폭력을 가정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무관심 할 때 사회도 도와줄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누군가는 지켜보고 관심 가져 주어야 제2, 제3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가정의 울타리가 어쩌면 누구도 넘어올 수 없는 높은 장벽이 되는 양날의 검이란 생각도 들었다. 책을 통해 공포스러우리만큼 폭력의 공포를 함께 하는 듯했다. 나야말로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것 같은 힘겨움에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던 힘겨운 독서였다.

나는 먹잇감이나 희생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정말로 살아 있고 싶었다.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존재로.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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