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
김윤성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여행책을 읽었다. 원래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만은 예외였다. 세상이 하도 흉흉하여 집에서 보내는 날들이 많아지는 이때, 대리만족도 할 겸 집어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실제 비행기를 타고 걸어서 다니는 여행보다 생생하게 다가온 즐거운 대리만족이었다. 여기저기서 한국인 출입국이 불허되거나 억류되는 뉴스를 보다 보니,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저자는 22년간 창원 시청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30여 개국을 여행했고 그때 받았던 소회를 여행 에세이로 풀어 냈다. 문학적 감수성까지 더해져 그 세계로 들어가 본 듯 느낌도 잠시 가졌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솔직 담백하게 쓴 문체가 퍽 마음에 든다.

 

 

 

 

그 순간 내 여행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행은 기대만큼 아름답거나 근사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보다 훨씬 비루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가끔 오늘처럼 말도 안 되는 풍경을 여행에서 만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한다. 이 한 풍경을 목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풍경을.

p133

 

 

저자와 다녀와 본 곳이 겹칠 때는 나의 추억을 꺼내서 함께 곱씹어 보고, 그렇지 않을 때는 앞으로 가보고 싶은 여행지 버킷리스트에 추가해 보았다. 지금쯤 그 나라의 공기, 색감,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순간이다.

 

저자의 말대로 여행으로 삶이 은유하는 기분을 살짝 맛볼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예기치 못한 사람들, 음식들, 풍경들. 꼭꼭 눈에 담아두고 사진으로 남겨두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적절한 치유제가 된다. 여행을 가보면 알겠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이 아니다. 역도 없고 정확한 시간도 지켜지지 않아 계획이 틀어진 오슬로 여행 편을 읽으며 생각했다. 여행도 우연이라고. 삶은 큰 우연의 연속이고 우연이 모여 필연이 되는 것이다.

 

 

 

 

나도 몇 년 전 다녀온 여행지 사진을 보면서 답답한 마을을 달래고,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받았다.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을 치료하는 상비약이다. 피로할 때 하나씩 꺼내 먹는 달콤 쌈싸름한 다크초콜릿처럼 다시 힘내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사치다.

 

 

비록 내가 직접 가지 못해 책으로 읽고 보는 거였지만 충분히 즐거웠다. 대체 언제쯤 일상을 보낼 수 있을까. 요즘 같은 시기에는 마음 놓고 사람을 만나고 지나가고 부딪히며 침 튀기며 만나는 일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만남 자체에 부담을 느끼며 사람을 한 객체가 아닌 잠재적 바이러스 보균자로 몰아가고 있다. 요즘 더욱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여행의 낯섦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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