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말들
천경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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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때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빛나고 가치 있는 것들이 있다. 사랑, 관계, 신뢰, 미움, 슬픔 등. 표정이나 몸짓, 말을 하지 않으면 내재되어 있는 감정을 알 길이 없다. 아름다움과 추함, 시간 등도 무형화의 존재지만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존재하고 있지만 실체는 없는 무형의 것들을 오늘따라 생각해 본다.

 

사진과를 졸업해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사진과 퍼포먼스, 공공미술 작품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천경우의 사진 에세이를 읽었다. 전 세계로 사진을 찍고 공공 퍼포먼스를 하기 때문에 어쩌면 여행 에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업노트를 훔쳐보는 일은 어떤 활동의 찰나를 촘촘히 들여다보는 충분한 시간을 선사한다. 나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흐르는 시간 1분 1초를 사진에 담은 시간 마법사처럼 느껴졌다.

 

 

사과 한 알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천경우 작가는 사람들을 모아 두고 사과 한 알을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오로지 먹는데만 집중하는 모습,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만끽할 시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다. 오.. 사과를 이토록 진지하고 마주한 적이 있나 싶다. 사과를 통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과 한 알의 기쁨, 먹는 즐거움, 집중하는 시간. 당신에게 사과 한 알은 어떤 존재일까.

 

퍼포먼스 'Versus'는 서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익명의 사람 50여 명이 공공장소에서 벌이는 프로젝트다. 서울, 뉴욕, 바르셀로나, 리스본, 취리히, 괴핑겐, 로스킬레 등 7개국 7개의 도시와 대륙을 오가며 진행된 프로트는 한자 인(人) 자에서 비롯되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맞댄 모습. 대치와 양방향성은 서로의 체온과 심장의, 숨소리를 들어보는 유대 방식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기댄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신기한 점은 이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고 고스란히 상대방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평온한 표정이다.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자연스러움은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개인이며, 나 자신을 잠시 쉬게 만드는 연대다.

 

 

이는 익명성 보장과 규칙으로부터의 보호 그리고 신뢰기도하다. 나와 마주치는 사람 누구도 아니기에 더욱 편안한 것이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나무 숲에서 비밀 누설의 시원함을 느끼는 때처럼..

 

 

에세이의 제목과 같은 '보이지 않는 말들'은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다. 의도 된 설정인지 궁금하지만 적절한 위치, 탁월한 편집이라 감탄할 수 박에 없다.

 

독일 브레멘에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에너지와 일상을 모티프로 한다. 도시 거리 밑 땅속 파이프에 노동자들이 생각한 글귀를 담아 보자는 취지다.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일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시민들은 그들의 따스한 에너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천경우 작가는 이렇게 회상한다. "사람들은 작품이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 묻곤 했는데, 나는 시민들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아래로 에너지 원료뿐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도 우리 곁에 함께 흐르고 있다는 상상을 하길 기대하였다"라고 말했다. 이 땅속 문구들은 파이프의 수명이 다할 50-80년 이후에나 발견돼 아카이빙 될 것이다. 타임캡슐이 생각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천경우 작가의 사진과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함께 하고 널리 공유될 때 가치가 커진다는 사실도 되새긴다. 무형의 프로젝트일 경우 휘발되어 버리는 속성을 글과 사진으로 남겨 참여하지 못한 사람도 공감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의미있는 퍼포먼스 우연한 퍼포먼스가 있다면 주저 없이 나도 참여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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