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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갈 곳이 없을까요? ㅣ 웅진 세계그림책 197
리처드 존스 그림,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20년 1월
평점 :
따스한 온기가 그리운 계절이다. 길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은 괜찮을까? 괜한 걱정이 밀려온다. 모두가 따뜻한 음식과 집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지만 떠돌이 개 페르에게 가진 거라곤 빨간 스카프뿐이다. 페르는 갈 곳이 없다.
비를 머금은 축축한 풀숲을 지나, 나뭇잎을 쫓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도시였다. 까만 밤도 하얀 아침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도시는 무언가 생동감이 차올랐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그러나 바삐 다니는 사람들, 무관심한 발길 속에 페르로 휩쓸리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페르가 갈 곳이 있을 것 같아 두리번두리번 이곳저곳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어디 편히 쉴 수 있는 곳, 맛있는 음식을 먹을 곳이 없을까?
하지만 페르를 환영해주는 곳은 없었다. 가는 곳마다 '저리 가!', '나가!'라며 냉대 받기 일쑤였고, 가엾은 페르는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이끌고 한 카페 앞에 선다. 저 카페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이때 배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 페르는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슬그머니 들어가 봤다. "한번 들어가 볼까?"
이게 웬걸, 식탁보를 엎으면서 난장판이 되었고 페르는 놀라서 헐레벌떡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몸이 덜덜 떨리고 그럴수록 더 크게 짖기 시작했다. 짖는 건 위협적인 행동이기도 했지만 방어적인 행동이기도 했다. 페르는 무서웠다.
급하게 도망치다가 그만 하나뿐인 스카프도 풀려 버렸다. "어떡하지, 내 하나뿐인 스카프인데.."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한적한 공원 구석에서 쉬고 있었던 찰나. 누군가가 다가왔다.
아까부터 페르를 눈여겨 본 소녀가 살며시 다가와 스카프를 묶어 주었다. 페르는 순간 따스한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소녀의 얼굴과 손길에서 이제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족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페르는 소녀의 족이 되었다.
떠돌이 개는 목걸이가 없다. 오직 가족 있는 개만이 표식이 있는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 페르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빨간 스카프를 매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안타깝고 슬픈 광경. 동화책 그림 속에는 멀리서 페르를 지켜보던 소녀가 있었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었다.
소녀는 항상 페르의 곁에서 관심 갖고 눈여겨보았던 거다. 그런 소녀는 페르의 스카프를 걸어주며 가족이 되어주었다. 세상의 수많은 개와 주인의 인연은 작은 것부터 시작된다. 추운 겨울을 이기는 것을 이처럼 사소한 불씨 하나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