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 - 패션 컨설턴트가 30년 동안 들여다본 이탈리아의 속살
장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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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하면 가장 먼저 음식, 패션, 문화, 명품 등등이 떠오를 것이다. 가장 여행하고 싶은 나라 순위권에 당당히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3년 전 다녀온 이탈리아를 떠올리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한국에서는 전혀 듣지 못하는 '예쁘다~'라는 말도 이태리 남자들에게 수도 없이 들었다. 어딜 가나 동양 여자는 ' 케 벨라(Che bella)~'라는 말을 달고 산다. 때문에 괜한 우쭐함과 행복함으로 살짝 들뜬 여행이었다. 밀라노도 잠깐 다녀갔는데 거리며 사람들은 다들 화보 찍는 줄 알았다. 옷은 왜 이리도 잘 입는지, 성당 보러 갔는데 그것보다 사람 구경이 더 재미있었다.

 

 

책은 40여 년간 패션 컨설턴트로 살아온 장명숙이 한국인의 뿌리고 이탈리아에서 느낀 점을 담은 책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유학을 떠난 1세대라 할 수 있다. 백화점 바이어로 이탈리아를 제집 드나들듯 듯했으니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맞다. 특히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 갈 때면 어김없이 고향에 온 느낌이 든다는 밀라논나(유튜브 명)다. 2009년 초판이 발행된 후 재정비해 다시 나온 버전이다. 현재는 장명숙 밀라논나, 60대 패션 유튜브로 더 잘 알려진 그녀의 이야기는 어떨까 무척 궁금하다.

 

 

이탈리아가 패션의 도시로 급부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1970년대 후반까지는 파리가 패션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1980년대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에 밀리고 만다. 이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은 이탈리아 패션계의 대부'조반이 바티스타 조르지니'다. 당시 디자인은 프랑스가 해도 가내 수공업과 인건비가 저렴해 이탈리아에 하청을 주어 생산한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이윤과 명성이 프랑스에 쏠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이탈리아 디자이너를 발굴한다. 마침내 1978년 여성복 박람회를 개최하며 패션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지금은 크리스찬디올, 샤넬, 구찌, 조르지오아르마니, 프라다 등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명품들이 이탈리아를 대표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유행을 이끄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오트 쿠티르 위주로 고급 맞춤복을 선보이는 반면, 이탈리아는 기성복 위주로 유행을 선도한다. 뭐가 유행하면 정신없이 그걸 모두 하고 있다. 부화뇌동이라 비꼴 수 있지만 알고 보면 모험심과 호기심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명숙 밀라논나의 친분의 끝은 어디일까. 스칼라 극장의 인연으로 만난 '루치아노 파바로티'난 함께 수업을 듣던 '도메니코 돌체', 그는 훗날 파트너였던 스테파노 가바나와 '돌체앤가바나'를 론칭하기도 한다. 그밖에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영화배우, 모델 등 책 읽는 동안 마치 내가 만나본 것 같은 황홀감에 빠져들었다.

 

 

익히 이태리 사람들의 북부와 남부로 나뉜 정반대의 기질, 저녁은 황제처럼 푸짐하게 먹고 아침은 거지처럼 먹으며 점심은 건너 뛰다시피하는 습관, 자기 집은 반질반질 윤이 나는데 거리는 엄청 지저분한 사람들의 성미, 남부로 갈수록 여성들의 삶이 힘든 점 등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오랜 세월 동안 경험을 쌓은 사람들에게만 풍겨나는,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세련미의 정수, 바로 그것이었다. 난 그제야 왜 이탈리아에서는 중년이 넘는 사람들이 염색을 잘 하지 않는지 알았다. 무리하게 젊어 보이려 하다가는 품위를 잃고 오히려 경박해 보일 수 있다. 젊게 사는 건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열린 사고와 당당히 살아가는 정신의 문제지, 흰머리를 감추고 주름을 제거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P211

 

 

또한 현재 실버 유튜버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젊음과 건강에 대한 견해도 들어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나이 듦은 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견해가 어서 빨리 개선되길 바란다. 자신만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성형으로 바꾸려는 유행은 어제까지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책을 정말 아끼면서 읽었던 게 얼마 만인가. 점점 줄어드는 페이지가 안타깝기까지 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가봤거나 유학, 살아본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유튜브에서 하지 않은 이야기나 10년 전 장명숙 밀라논나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패션 이야기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활, 음식, 풍습 등을 바로 옆에서 중개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인 줄 알았다. 그녀의 애정 어린 시선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으니까.

 

 

아.. 나도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어르신의 혜안과 젊은 세대와도 격 없이 지내는 마음가짐이 밀라논나를 인기 유튜버로 만든 건 아닐까.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거다'. 올해로 42년 째 패션에 몸담고 있는 뚝심과 지적이고 건강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닮고 싶고 언제나 응원한다. 명품은 물건에만 있는 게 아니다 멋있는 인생을 사는 노년에도 명품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다면 밀라논나에게 붙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오늘을 살아가는 기품 있는 노년의 모습을 밀라논나에게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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