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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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박사 :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멍 뚫린 음식을 먹지 않았나?

도넛이라든가, 오징어튀김이라든가, 양파링, 뭐 그런 거.”

양 사나이 :

“도넛이라면 매일 점심으로 먹는걸요.

크리스마스에도 도넛을 먹었을 테죠.

도넛이라면 대개 구멍이 뚫려 있죠.”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빠질 수 없는 시그니처 캐릭터가 바로 '양 사나이'다. 1982년에 발표한 《양을 둘러싼 모험》에서 등장한 양 사나이는 신묘한 캐릭터다. 소심하면서도 성실한 양 사나이 또한 잊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단편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는 1985년 쓴 것으로 한국작가 최초로 이우일 작가와 콜라보 했다. 마치 '양 사나이'만을 위한 번외 편 같다.

 

 

하루키 월드의 캐릭터는 이 세상 텐션이 아닌 설정이 대부분. 꿈과 현실,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듯한 이야기 주머니 속에서 부유하는 맛이 하루키 월드의 매력이다. 이우일 작가와 만나 그 이상한 매력을 잘 살렸다. 영화로 치면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처럼 느껴질 정도다.

 

 

크리스마스를 4개월 반이나 남겨 둔 여름 어느 날, 양 사나이 협회에서 크리스마스 음악을 의뢰한다. 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서거한 '성(聖) 양 어르신'의 이천오백 년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한 의식이다. 양 사나이는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한 소절도 만들지 못해 초조하다.

 

 

 

이때 풀이 죽은 양 사나이 앞에 나타난 양 박사. 자초지종을 듣더니 저주에 걸렸다고 단언한다. 이유는 도넛 가게에서 하는 양 사나이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멍 뚫린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 12월 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인 동시에 성 양축제일이다. 한밤중 구덩이에 빠져 죽은 거룩한 날을 기념해 구멍 뚫린 음식은 금기였다.

 

 

 

결국 양 사나이는 저주에 걸려 피아노도 못치고 작곡도 못하는 거라며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듣는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양 사나이는 양 박사의 제안을 수락하고 구덩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아.. 2미터 3센티가 이렇게 깊었었나.. 끝도 없이 떨어지네.. 이거 곤란하군.'

 

 

양 사나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꿈인지 환상 세계인지 모를 곳을  탐험 중이다. 그곳에는 배배 꼬인 꼬불탱이 문지기, 208.209라는 번호가 적힌 쌍둥이(영화 <샤이닝>에서 오버룩 호텔에 사는 쌍둥이처럼) 심술쟁이 바다까마귀 부인과 부끄럼쟁이가 살고 있었다.

 

 

과연 이상한 구덩이에 빠진 양 사나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저주를 풀고 돌아올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에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만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하루키 스타일의 단편동화다.

 

하루키만큼 이상야릇한 양 사나이가 사는 세계로 크리스마스 상상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어릴 적 착한 일을 많이 해야 받을 수 있었던 산타의 선물처럼. 어른의 크리스마스에는 구멍 뚫린 음식을 조심해야겠다.

 

 

하루키 팬이라면 믿고 보는 단편이다. 초판에 한해 크리스마스 엽서가 동봉된다. 원더랜드에서 하루키 월드까지! 매~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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