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경비원의 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0
정지돈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경비원은 투명 인간이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또는 사람들 눈에는

유니폼만 보일 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p77

소설 속 주인공들은 철저히 소외된 인물이다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조용히 밤의 세계를 지킨다. 이름이야말로 '야간 경비원'. 소설이지만 일기 같기도 하고, 시나리오 같기도 하고, 그냥 끄적 된 메모장 같기도 하다. 굳이 형식으로 따지만 블로그에 끄적이는 그날의 감상이다. 영화 같은 장면이 이어지다가도 뚝 끊겨 꿈같기도 하고 현실로 돌아왔다가 다시 나아간다. 리얼리즘과 픽션을 넘나드는 실험적인 형식이 묘하다.

 

비현실적인 상황이 이어지다가도 실존하는 장소, 사람, 상품명이 문득 나오면 둥둥 떠 가다가도 갈피를 잡았다. '아..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간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텍스트를 붙잡는다.

 

마치 소설이란 텍스트로 변환된 누벨바그 영화를 끊어 보고 있는 것 같다. 내 마음대로 보고 싶은 장면을 돌려보는 스트리밍. 국제야간경비원연맹이라는 턱도 없는 허상도 어떻게든 사회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아우성이라 느껴진다. 그래서 조금은 서글픈 인생들이다.

 

서울스퀘에서 일하는 경비원을 대하는 사람들의 공허한 태도. 누구 하나 없어져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의 적당한 무심함은 1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마주쳐도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얼굴과 이름 누군지 상관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투명 인간이다.

 

 

이들은 시시콜콜 모여 시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 혹은 해킹으로 대리만족ㅡ 욕구를 나눈다. 야간 경비원은 비정규직, 이들 언어를 빌리자면 밑바닥 중 밑바닥이다. 이들에게는 현재가 중요할 뿐 미래는 어때도 상관없었다.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이 있는 것 아나키즘과 방랑자, 외톨이, 아웃사이더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야간 경비원 기한오를 떠올려 본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기댈 수 없으며 실패한 인생이라 불리는 청춘들. 누가 그들은 세상의 낙오자라 말할 수 있을까. 서울역의 과거와 오늘의 상징성을 담아 날카롭고 맹렬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작가 정지돈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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