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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의 작가 '줄리언 반스'는 투 머치 인포메이션(TMI)이다. 소설가로서 무척이나 탁월하지만 그 방대한 지식의 향연은
에세이에서도 숨길 수 없다. 소설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대놓고 지면으로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는 지인,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친척 등의 죽음을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하게 다루며
두렵거나 피해야 할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다. 독자는 시시콜콜한 반스의 가족사에 대해 끝도 없이 들어야 했다.
지루하지 않았냐고? 천만에! 생각보다 사적인 이야기의 블랙 유머가 가미되어 소설을 읽는 듯했기 때문이다. 반스는 역시 무엇을 꼬집는데 재능이
있고 독자는 반스의 반골 기질도 수용하는 너그러움을 가졌으므로.
이렇게 자신의 지적 수준을 뽐내는 또 하나의 책이 나왔다. 바로 이름하여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이다. 책은
1989년부터 2013년까지 25년간 다양한 예술문학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선별해 엮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미술관을 드나들었던
수동적 관람 형태를 벗어나 성인이 되어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능동적이고 의식적으로 보는 주관이 생겼을 때 드디어 그림은 말을 걸어왔다.
루브르 박물관의 어떤 인기 없는 코너에 혼자 서서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게 하는 모방 압력이 없이 그림을 관람했던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반스는 그림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독자들도 평론가나 유명인의 권위에 눌리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가 세상을 한 가지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됨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영화도 그렇다. 영화를 좋아해 나만의 관점을 적어보는 일은 내 생각을 통해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싶어서이다. 특히 열린 결말은
영화가 끝난 후 다시 시작하는 마법이다. 주인공을 다시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맨 앞으로 돌아가 과거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예술은
작품이 작가를 통해 나온 후에야 또 다른 시각들로 끊임없이 성장한다. 오로지 작가의 영역이 드디어 다양한 사람들이 향유하는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작품이다.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고여있는 작품은 가치를 상실한다.
책에는 유명 화가들도 있지만 우리에게 낯선 화가들도 있다. 유명한 화가의 유명한 작품이 아닌 생소한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꼭
봐야 하는 작품만을 보지 않을 권리, 내가 보고 싶어 봤고 인상적인 작품에 대해서만 쓴 지극히 사적인 미술 이야기란 거다. '아니 사적인 감상을
왜 책으로 읽어야 해?'라고 묻는다면 세상에는 똑같은 관점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나아가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사랑에 대한 TMI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TMI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요리에 대한
TMI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그리고 최근에는 미술 영역까지 섭렵했다. 낭만주의부터 현대 예술에 이르는 총 17편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미술에 대한 독창적인 문인의 관점을 들어볼 수 있다. 천 일 동안 밤새 이야기를 했던 세헤라자데의 21세기 부활이다. 빽빽한
텍스트가 적힌 지면을 보고 있을 때면 방대한 지식의 깊이와 털어놓고는 말의 지원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줄리언 반스는 뼛속까지
스토리텔러다. 이 남자가 쓰지 못하는 주제가 있을까.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사람들을 매료시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