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피해자 없는 범죄, 성폭력 수사 관행 고발 보고서
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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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너 강간당한 게 맞니?"

 

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 같다. 아니 소설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사실이라 믿고 싶지 않다. 과연 이런 일이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점이 오싹할 뿐이다. 저널리스트인 T.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은 방대한 사건 기록과 서면 인터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재구성해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를 펼쳐 냈다.

 

시간은 18세 소녀의 강간 신고가 허위였다는 사건으로 무고죄 기소된 2010년으로 시작한다. 소녀가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처음으로 임대 아파트에서 홀로 살던 때 폭력을 당했고, 이 사건을 쫓는 두 여성 형사 '갤브레이스'와 '헨더샷'을 보여준다. 이 둘은 원칙에 입각하여 오랫동안 묵인되어 온 수사 관행을 깨고 사건을 바로잡는다.

 

공조수사에도 적극적이었으며 헨더샷은 성폭력 수사에서 혐의를 허위라고 결정 내리기 전에 반드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수시로 피해자가 말을 바꾸거나 흐리더라도 핵심이 바뀌지 않는 한 허위라고 판단하지 않았으며, 경찰이 흔히 걸리는 '피해자 다움'의 함정도 빠져나간다.

 

마리는 진짜로 범죄에 노출되고서도 불우한 가정사와 여러 이유들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많은 여성들이 그때 당한 기억을 억지로 제거하거나 묵인한다. 대체로 순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두뇌에 큰 손상을 입힌다. 경험에 대한 불확실한 사건들이 점철되며 실제 일어난 일과 기억의 일이 일치하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는 두려움이다. 때문에 여성은 제대로 보지 못한 범인을 묘사할 수 없고, 아물지 않은 기억을 견디기 위해 오히려 눈을 돌리고 입을 다문다.

 

이보다 더 많은 디테일이 있지만 분야에 정통한 사람만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다. 이에 갤브레이스와 헨더샷은 최대한 인도주의적으로 마리를 상처 입힌 연쇄범을 잡기에 이른다. 그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꾸역꾸역 보는 일이 쉽지 않다.

 

성폭력은 강력 범죄 중 신고율이 가장 낮은 범죄다. 피해자가 스스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회 시스템의 문제뿐만 아니라. 진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3차 이상의 행동이 상처를 더 깊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판까지 가더라도 끊을 수 없는 의심을 따라다니고, 재판장에서 또 한 번의 세세한 증언을 범인과 함께 해야 한다. 왜 이렇게 의심의 의심을 하는 걸까. 읽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계속해서 갱신하는 책이다.

 

 

 

책은 '여성은 강간 당했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라는 사회 관행이 말도 안 되는 괴물 시스템을 만든 건 아닌지 생각해 보길 촉구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진 여성 혐오는 다수의 남성 중심 시스템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앞으로 이 책은 널리 읽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넷플릭스에서 근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넷플릭스 이용자라면 미드 또한 추천하는 바이다.

 

소설보다도 흡입력 있는 스타일은 그들의 이야기와 행동에 귀 기울이게 한다. 잘 만들어진 탐사 르포르타주다. 우리가 그동안 강간 피해자들에게 가했던 2,3차, 그 이상의 폭력이나 무관심을 직시하도록 돕는 책은 냉철하면서도 신랄한 비판적인 시간도 아끼지 않는다. 세상에는 또 다른 마리가 존재할 것이다. 마리는 어쩌면 절대 없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첫걸음을 떼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진실이라 말할 수도 없는 수많은 일들이 그냥 묻힐 수밖에 없다고 해도 끝까지 물어 늘어지는 정신도 잊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세상에는 사려 깊고 끈질긴 집념의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외면할 수 있는 목소리를 경청해준 연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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