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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 - 1840~1975
비에른 베르예 지음, 홍한결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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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있었던 나라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나라들은 우표를 발행했다.
땅따먹기는 인류의 오랜 본능 중 하나여서 맹목적으로 전쟁과 원주민 착취를 통해 이어져왔다. 식민 지배라는 이름 아래 유혈분쟁은 그치지 않았고,
강제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당시 나라 구실을 하려면 우표 발행은 기본이었다. 다행히도 시공간을 뛰어넘어 21세기에 그 나라를 작게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책은 한 우표 수집가이자 건축가가 발견한 우표들을 보면서 지배욕, 과시욕 등
남성적인 도취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 나라의 역사나 이념, 대외적인 이미지를 표방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 나라가 실제 존재했는지의
여부를 우표로 판단할 수 있다. 아주 귀한 자료이며, 매력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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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를 텍스트의 바다에서 찾는 기분이다. 우표의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외우기도 벅찬 독특한 이름만큼 고유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나라들은 이제 없다. 하지만 우표가 남아 '여기 이런 나라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표는 그 나라의 실제 존재 여부를 말해주는 구체적 물증이다.
19-20세기에 있던 나라 중심이며 인구도 2000천여 명 남짓인 작은 국가도
있었다. 이런 작은 국가들이 하나둘씩 제국에 편입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쓰여있다.
생텍쥐페리가 스페인의 허락을 받고 주비곶 바로 북쪽에 비행기 착륙장의 기지 책임자로
일했던 일화도 나온다. 그가 기록했던 주비곶의 낮과 밤, 원주민들의 일상도 재미있다. 더 궁금한 내용은 《야간비행》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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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만주국'도 등장한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한창일 때 중국
만주 지방을 침략하고 1932년에 나라를 세웠다.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은 '거짓 위'자를 붙어 '위만주국'이라 부르기도 했다. 일본은
광물자원을 탐했던 터라 멸망한 청나라의 황제 푸이를 최고 통치자로 앉혀 사상누각을 만들었다.
갑자기 묻고 싶어졌다. 그 나라에 살던 국민은 편입이나 주권 상실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잦은 전쟁과 수탈, 이주 등이 힘들지는 않았을까? 읽는 내내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이 경쟁스럽게 펼치는
땅따먹기 노름에 지친 국민들의 시름은 말도 못 했을 것 같다. 겨우 안정된 터를 잡았는데 갑자기 시작된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고, 새롭게 시작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오랜 전쟁터였던 대한민국의 국민이 느끼는 감회는 남다르다.
책은 사라진 국가의 역사라 당시 개개인의 역사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간접적인
우표와 당시 발간된 신문, 문서, 소설 등을 통해 50여 개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우표나 역사, 인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만족시켜줄 책이 될 것이다.